1-1. (1-6) Mozart : Anadate with 5 Variations K.501
1-2. (7-10) Rachmaninov : Suite no.2 op.17 for 2 Pianos
1-3. (11-13) Bartok : Concerto for 2 Pianos, Percussion and Orchestra
1-4. (14-16) Debussy : En Blanc Et Noir
2-1. (1) Lutoslawski : Variations on a Theme by Paganini
2-2. (2-4) Bartok : Sonata for 2 Pianos and Percussion
2-3. (5-18) Saint-Saens : Le Carnaval des Animaux
2-4. (19) Ravel : La V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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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블루레이]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풍으로', 8번 & 14번> ,<엘렌 그리모와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슈만, 실베스트로프> ,<[블루레이] 엘렌 그리모와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슈만, 실베스트로프> … 총 7558종 (모두보기) 소개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최근작 :<[블루레이] 생상스 :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한글자막)> ,<생상스 :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한글자막)> ,<2022 빈 필하모닉 여름음악회> … 총 1340종 (모두보기) 소개 :생상스는 19세기와 20세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프랑스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였고 문학 방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인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12세 때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에 입학하였으며 16세 때에는 첫번째 교향곡을 발표하였다. 17세 때, 성 마리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하였으며, 21세 때만든 두번째 교향곡은 성 세실리아 협회의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26세 때부터 4년간 니데르메이르 종교 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있으면서 포레, 메사제, 지구와 같은 유능한 제자를 육성하기도 했다. 1879년에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발표했으며 그 후 그는 10여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음악을 작곡하였다.
생상스의 음악 기법에 있어서는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의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가 있다. 로망 롤랑은 말하기를 "생상스의 에술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게 표현이 이뤄져 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바꿈, 넘쳐 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어디까지나 글룩, 모차르트등의 고전의 기초 위에 선 것" 이라고 했다.
최근작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음악 -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바르톡, 드뷔시, 루토슬라프스키> ,<베토벤 : 교향곡 전곡 [5CD]> ,<바흐 : 영국모음곡 1-3번 [2CD 3단 디지팩]> … 총 166종 (모두보기) 소개 :1936년 미국 뉴욕 태생의 데이비드 진먼은 7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후 뉴욕의 음악 및 예술고교와 오벌린 음악원 등에서 수학하고, 1963년에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전공했다. 명 지휘자인 피에르 몽퇴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았고 더욱 체계적인 지휘 수업을 받고자 1958년부터 메인 주에서 몽퇴가 주관하는 여름 지휘자 클래스에 들어가 강습을 받았다. 1961-64년까지 몽퇴의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1962년 덴마크 국립방송관현악단의 지휘자로 데뷔해 본격적인 지휘자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1963년 6월 파울 자허 후임으로 네덜란드 실내관현악단을 지휘했고 이듬해 시몬 골트베르크와 함께 네덜란드 실내관현악단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그 후 진먼은 네덜란드를 본거지로 삼아 활동을 시작했다. 유럽은 물론 북남미주,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일본(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등에 이르는 각지에서 객원 지휘를 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가 지휘자로서 미국 무대에 선 것은 1966년부터 1967년 시즌에 열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7회에 걸친 연속 연주회를 통해서이다. 이후에도 그는 뉴욕 필과 LA 필도 성공적으로 지휘해 주목을 끌었다. 1974년부터 로체스터 필 음악감독까지 맡아 그야말로 미국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네덜란드에선 1977년부터 로테르담 필 수석 객원 지휘자로 취임했다. 1980년, 에도 데 바르트 후임으로 음악감독으로 취임했으며, 이후에는 볼티모어 진먼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볼티모어 심포니 시절에는 존 애덤스, 카니스 등의 미국 현대 작곡가 작품의 볼티모어 초연을 지휘했다.
1995년부터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 부임했고 이듬해 아스펜 음악제 음악 감독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피바디상을 수상했다. 톤할레 오케스트라에선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서곡 집, 미사 솔렘니스로 이뤄진 여러 전곡 시리즈를 수행했다. 미사 솔렘니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전주의 녹음의 베렌라이터 버전 사용과 고음악 주법을 채용한 오케스트라 시리즈물의 결과들은 해석의 타당성을 놓고 찬반 양론이 심하게 갈렸다. 2005년에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BBC 프롬스 공연을 지휘했다.
1999년 German Record Critic's Prize를 수여했다, 그 외에도 많은 유명한 상들을 받았다. 2000년 5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 상'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Zurich Art Prize를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Theodore Thomas Award과 2008년에는 Midem Classical Award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2011년 지휘자를 희망하는 차세대 젊은 음악가들에게 트레이닝 수업을 해주고 있으며 취리히 예술대학에서Golden Note 상을 받았다.
현재 진만은 뉴저지 자택과 취리히를 오가며 톤할리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와 녹음을 수행하고 있으며 빈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뉴욕 필, 베를린 필, NHK 심포니에 객원 지휘를 나가고 있다. 100장이 넘는 디스코그라피를 자랑하고 그 중엔 5장의 그래미상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의 디스크 그랑프리상, 두 번의 에디슨상 등이 진먼의 명예를 드높였다. 특히 소프라노 던 업쇼의 독창과 런던 신포니에타의 연주로 지휘한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넌서치 레이블)는 현대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슬픈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려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넌서치 레이블의 이 음반은 1992년 영국 클래식 음반 차트에서 무려 2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면서 100만장 가까이 판매되는 기적을 창조했다.
■ 주요이력
1965-1977 Music Director, Nederlands Kamerorkest
1974-1985 Music Director, Rochester Philharmonic
1979-1982 Music Director, Rotterdam Philharmonic
1985-1998 Music Director, Baltimore Symphony
1995-2014 Principal Conductor, Tonhalle-Orchester Zurich
최근작 :<베토벤, 슈만 & 프랑크 : 바이올린 소나타 (MQA/UHQCD)> ,<드뷔시 : 환상곡, 소나타 & 바다 (MQA/UHQCD)>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6-8번 [180g 2LP 게이트폴드]> … 총 400종 (모두보기) 소개 :1941년 6월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세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며, 음악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빼어나 신동 소리를 들었다. 열한 살에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극장 테아트로 콜론에 데뷔했다. 1955년 가족과 함께 빈으로 이주해 프리드리히 굴다의 제자가 되었고, 1957년 부조니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0년 연주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슬럼프를 겪던 아르헤리치는 1965년 제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녀의 연주는 쇼팽 해석을 혁신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음반과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며 숱한 명반과 명연을 남겼다. 현란한 테크닉과 파워풀한 타건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그녀는 〈BBC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녀는 독주 무대 대신 실내악 협연 위주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과 협연을 이어오고 있다. 또 루가노 페스티벌,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 등을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녀에게는 성姓이 다른 세 딸, 1964년 중국 출신 지휘자 첸량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리다 첸, 1970년 두 번째 남편이었던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니 뒤투아, 1975년 연인이었던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세비치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테파니 아르헤리치가 있다. 엄마로서 아르헤리치의 모습은 스테파니가 감독한 다큐멘터리영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 딸들Bloody daughter〉에 담겨 있다.
1992년 암(악성 흑색종)을 진단받은 그녀는 1997년 병이 재발했지만 회복해 완치되었다. 여든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작 :<라벨 : 관현악곡집> ,<[블루레이] 슈트라우스 : 살로메> ,<슈트라우스 : 살로메> … 총 625종 (모두보기) 소개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Of Amsterdam, RCO)
암스테르담에 본거지를 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관현악단. 1988년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로부터 왕립 칭호를 하사받기 전까지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Concertgebouworkest Amsterdam)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