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낯선 이름이 되고 말았지만 이온 보이쿠(Ion Voicou, 1923~1997)는 일세를 풍미했던 루마니아 출신의 명 바이올리니스트로 몇 장 되지 않는 그의 LP들은 현재 고가로 거래될 만큼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CD로는 베를린 클래식스에서 발매된 파가니니 협주곡과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 이마저도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번에 CD로 발매되는 멘델스존과 브루흐의 협주곡은 거장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짜릿한 한 장이 되지 않을까 한다.
부카레스트에서 태어난 보이쿠는 예외 없는 신동이었다. 여섯 살 때 음악을 시작, 주변을 놀라게 한 그는 부카레스트 왕립음악원에 입학, 7년 코스를 불과 2년 만에 끝내 버린다. 그리고 부카레스트 방송 관현악단의 단원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당시 그를 눈 여겨 본 인물이 바로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였다. 1943년 루마니아 국립 필하모니의 악장을 지내며 한편으로는 그 유명한 조르쥬 에네스코에게 배웠고,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후 직업 바이올리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음악활동 55년간 수천 번의 콘서트를 열며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애호가들을 열광시킨다. 특히 그 강력한 보잉은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할 만큼 인상적이고 짜릿한 것이었는데, 활동 당시에 쏟아진 그에 대한 평은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손가락과 활에 마법을 걸어 놓았다” “그는 시인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악마를 불러낸다” “그는 마법사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등등 그에게 쏟아진 찬사는 얌전한 종류의 것들이 아니라 아찔함에서 오는 경탄이었다.
이온 보이쿠의 활동 무대는 주로 동구권이었다. 서방세계에 상대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적었고 19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유럽 순회공연 열어 큰 감동을 선사했다. 1980년대에는 주로 유수의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했고 뛰어난 바이올린 교사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아쉬운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녹음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인데, 이번에 발매되는 멘델스존과 브루흐의 협주곡은 이온 보이쿠를 대표하는 음반으로 1965년 런던 데카에서 발매된 스테레오 버전이다. 진하디 진한 해석, 때로는 요염하게까지 느껴지는 보잉 - 콜렉터의 집에서 침을 꿀꺽이며 귀동냥으로만 들어야 했던 이 초 절정의 명연이 CD로 발매 되다니! 아마도 진정한 애호가라면 이 CD를 듣고 그 강렬한 보잉에 감동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한 가지 더,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의 꽉 찬 사운드 역시 비판의 여지가 전혀 없다. LP를 마스터로 해서 마구 찍어내는 조악한 마이너의 CD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음반이다.
글. 정만섭, KBS 클래식 FM 명 연주 명 음반 진행자
1-1. Concerto In E Minor For Violin & Orchestra, Op.64 (1-3) (Felix Mendelssohn)
1-2. Concerto No.1 In G Minor For Violin & Orchestra, Op.26 (4-6) (Max Br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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