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녹음방식 | ADD MONO | | ㆍ수입국 | Netherland |
- 1-1. Symphony No.40 (1-4) (Mozart)
- 1-2. Symphony No.94 (5-8) (Haydn)
- 1-3. Symphony No.8 (9-10) (Schubert)
- 2-1. Manfred - Overture (Schumann)
- 2-2. The Hebrides - Overture (Mendelssohn)
- 2-3. Ma Vlast (Smenata)
- 2-4. Oberon - Overture (Weber)
- 2-5. Rosamunde - Incidental Music (5-7) (Schubert)
- 2-6. Anacreon - Overture (Cherubini)
- 3-1. Alceste - Overture (Gluck)
- 3-2. Iphegenie en Aulide - Overture
- 3-3. Der Freischutz - Overture (Weber)
- 3-4. Euryanthe - Overture
- 3-5.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R.Strauss)
- 3-6. Les Prelides (Liszt)
| 최근작 : | <모차르트 : 피가로의 결혼 (한글자막)>,<[블루레이] 모차르트 : 피가로의 결혼 (한글자막)>,<[블루레이]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풍으로', 8번 & 14번> … 총 7620종 (모두보기) | 소개 : |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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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 <아르농쿠르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2DVD]>,<[블루레이] 레너드 번스타인 박스 세트 (5Blu-ray)>,<하이든 전쟁 미사> … 총 2680종 (모두보기) | 소개 : | 1732년 3월 31일 헝가리에서 가까운 남부 오스트리아의 로라우라는 빈촌에서 태어나, 1809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77세로 세상을 떠난 고전 음악의 기초를 닦은 대가이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익힌 사람이지만, 가장 건실하고 자발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교향곡, 협주곡, 현악4중주곡... 등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여러 음악양식을 처음으로 개척한,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긴 작곡가이다.
‘하이든’은 선배들의 작품에 내재한 지배적인 공허한 감상을 버리고 그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내세워 건실하고 순수한 예술을 창조하였으며, 그의 음악에는 발랄한 생기와 독창성이 있고, 신선한 자연미가 흐른다. 그는 같은 시대의 모차르트가 만하임악파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주로 바흐의 <클라비어 소나타>에서 작곡기교를 배웠고, 대부분의 4중주곡과 교향곡, 그리고 최후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4계> 등은 영원한 명작으로서 그의 음악성을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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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 <디아나 담라우 & 요나스 카우프만 -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 노래들 (한글자막)>,<[블루레이] 디아나 담라우 & 요나스 카우프만 -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 노래들 (한글자막)>,<슈만 : 피아노 협주곡 / 브루크너 : 교향곡 4번> … 총 3237종 (모두보기) | 소개 : |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음악평론가. 1810년 독일 작센 주의 츠비카우에서 저술가 겸 서적상 아버지와 교양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심취했고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시작하였으나 16세에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어머니의 뜻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결국 당대의 명피아니스트였던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832년 오른손 부상으로 연주자의 꿈을 접은 이후 작곡과 저술에 집중했으며, 1834년 동료들과 함께 최초의 음악잡지 가운데 하나인 《음악신보》를 창간, 10년간 편집장으로 일하며 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리데리크 쇼팽 등 새로운 음악가들을 소개했다. 펠릭스 멘델스존과 함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재조명하고 사후 묻혀있던 프란츠 슈베르트의 걸작들을 알리는 데도 크게 공헌한다. 1840년 스승 비크의 딸 클라라와 결혼하여 짧은 기간 동안 숱한 가곡들을 썼다. 슈만, 클라라, 브람스, 이 세 음악가의 만남은 음악사에서 오랫동안 가장 아름다운 인연 중 하나로 기억된다.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심해져 잇단 자살 시도와 2년간의 투병 끝에 1856년 본 교외의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친다. 4편의 교향곡 외에 피아노 협주곡, 첼로 협주곡, 피아노곡 [나비] [사육제] [교향적 연습곡] [어린이 정경] [크라이슬레리아나] [후모레스케], 가곡 [리더크라이스] [시인의 사랑] 등 작품들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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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 <리카르도 샤이 - Concert, Opera, Documentary [4DVD]>,<찬양의 노래>,<오라토리오 엘리야> … 총 1925종 (모두보기) | 소개 : |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로서 초기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입니다. 서양 음악 역사상 최고의 신동 중 한명으로 꼽히며, 만 38세에 일찍 숨을 거둔 점만 제외하고, 그는 음악과 삶 모든 면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작곡가였습니다. 작곡가이자 동시에 지휘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으로, 자신의 작품 및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모두 지휘하였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보다는 독일의 음악적 위상을 높이는 것에 더 많이 쓰였다는 평도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음악 학교의 이름이 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예술대학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수였고, 슈만 등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수 많은 일을 했으며, 그러한 노력의 성과 중 하나로 독일의 음악적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당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이던 쇼팽에게도 높은 금액의 공연료를 주면서 연주할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환경 때문인지, 인생을 사랑하며 사람 친화적인 그의 성격 탓인지, 그는 밝고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작곡했으며, 그의 작품은 선율, 리듬, 화성에서는 고전파 양식을 따랐으나 내용면에서는 표제적이고 묘사적이라는 낭만파의 특징을 띠면서 대표적 낭만주의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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