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Act 1 (Start)
- 2-1. Act 1 (Conclusion)
- 2-2. Act 2 (Start)
- 3-1. Act 2 (Conclusion)
| 최근작 : | <모차르트 : 피가로의 결혼 (한글자막)>,<[블루레이] 모차르트 : 피가로의 결혼 (한글자막)>,<[블루레이]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풍으로', 8번 & 14번> … 총 7621종 (모두보기) | 소개 : |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
|
| 최근작 : | <베토벤 : 장엄 미사 [SHM-CD]>,<바르톡 :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현과 퍼커션과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SHM-CD]>,<엘가 : 수수께끼 변주곡 (투명 LP)> … 총 501종 (모두보기) | 소개 : | 헝가리 태생의 영국 지휘자 솔티는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아카데미에서 도흐나니, 바르톡, 코다이에게 배웠고,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토스카니니의 조수를 지낸 후 1938년 부다페스트 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으로 데뷔하였다. 1939년 스위스로 망명한 그는 제네바에서 열린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1942)했으며, 1946년부터 1952년에 걸쳐서 바비에르 국립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피델리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극장의 규범에 익숙한 솔티가 진정으로 교향악단을 위해서 일을 시작한 것은 프리츠 라이너의 뒤를 이어 시카고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된 1969년부터이다. 그는 이 악단을 이끌고 최초의 유럽여행을 끝낸 후(1971) 그는 파리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이어서 파리 오페라 극장 내 음악감독도 되었으며 또한 1979년부터는 런던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솔티의 명성은 그가 여러 가지 악단을 지휘하면서 200곡 이상에 이르는 녹음을 한 것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바그너의 [반지]를 최초로 완전히 녹음하였으며(1958-1966),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아라벨라], [장미의 기사], 말러 교향곡 전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등을 녹음했다. 솔티는 후기 낭만파의 대작에 정통했고 그의 연주에는 다이내믹한 대조와 분명한 리듬, 관능적인 음향에 대한 기호를 찾아 볼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