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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고전/명작 분야 2위]
길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안소니 퀸
,
줄리아나 마시나
(출연) |
PS월드
| 2004년 12월
최저가
:
-원
I
최고가 : -원
재고
:
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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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점] 서가 단면도
(0)
제작년도 :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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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 1 장
언어
- 이탈리아어
자막
- 한국어
화면비율
- Standard 4:3
오디오
- Dolby Digital Mono
지역코드
- 지역 3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 재생가능
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최근작 :
<나는 타고난 거짓말쟁이>
,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
,
<사티리콘>
… 총 29종
(모두보기)
소개 :
예술 영화 감독의 대명사. 무려 5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는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은 드문 감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정식으로 학교에서 영화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으며, 21살이 되는 41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데뷔는 개그맨으로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코미디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가했고 틈틈히 라디오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두주자 로셀리니를 만나서 그의 조감독으로 일을 하게 된 그는, 자신의 유랑 생활을 투영한 <청춘군상>(53)으로 감독 데뷔, 수많은...
예술 영화 감독의 대명사. 무려 5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는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은 드문 감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정식으로 학교에서 영화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으며, 21살이 되는 41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데뷔는 개그맨으로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코미디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가했고 틈틈히 라디오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두주자 로셀리니를 만나서 그의 조감독으로 일을 하게 된 그는, 자신의 유랑 생활을 투영한 <청춘군상>(53)으로 감독 데뷔, 수많은 명작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영화와 펠리니는 동의어가 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그의 대표작 <길>에서 줄리에뜨 마시나가 연기한 주인공 젤소미나는 아직도 뜨거운 연민을 일으키는 인물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8과 1/2>(1963), <영혼의 줄리에타>(1964) 등을 통해 모더니즘의 신기원을 연 펠레니는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네아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펠리니 감독을 한 마디로 어떤 유형의 감독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펠리니의 영화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흔적들을 남겼고, 몇 차례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펠리니는 분명 네오리얼리즘의 계보 속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면서도 그 길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언어의 길을 탐색했다. 선배들의 작품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전후 이탈리아 감독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 되었다. 펠리니는 초기의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에서 차츰 벗어나 보다 자전적이고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영화에 끌어들이며 매력적인 신화의 세계를 일구어냈다. 그의 기태적이고 화려한 내면을 탐구한 자전적인 영화들은 네오리얼리즘과 결별하고 “펠리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짙은 애수와 함축을 담은 펠리니의 제작법은 펠리니 애스크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고전 속에 남아있다.
그는 90년까지 24편의 영화를 남기고 93년 10월 31일 심장발작으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93년 아카데미상에서 찰리 채플린, 오손 웰스, 알프레드 히치콕에 이어 4번째로 아카데미 명예상을 수상하였다.
출연 :
앤서니 퀸
최근작 :
<안소니 퀸의 황야의 선풍 : 리마스터링>
,
<[4K 블루레이] 나바론 요새 : 스틸북 한정판 (2disc: 4K UHD + 2D)>
,
<로스트 코맨드 : 리마스터>
… 총 140종
(모두보기)
소개 :
1915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퀸은 두 살 때까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어렸을 때 세탁부로 팔려 온 처녀 마누엘라를 사랑했지만 집안이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프란체스코는 멕시코 혁명 전쟁에 휩쓸려 철길을 따라 대륙을 떠돌았고 돌아와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떠돌았다. 주로 멕시코 이민 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장을 찾아 다녔던 퀸 일가가 정착한 곳은 동부 로스앤젤레스. 그 곳에서 프란체스코는 후진하는 트럭에 깔려 죽었다. 멕시코 인들은 대로를 건너는 것조차 불법이었던 지독한 인종차...
1915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퀸은 두 살 때까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어렸을 때 세탁부로 팔려 온 처녀 마누엘라를 사랑했지만 집안이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프란체스코는 멕시코 혁명 전쟁에 휩쓸려 철길을 따라 대륙을 떠돌았고 돌아와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떠돌았다. 주로 멕시코 이민 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장을 찾아 다녔던 퀸 일가가 정착한 곳은 동부 로스앤젤레스. 그 곳에서 프란체스코는 후진하는 트럭에 깔려 죽었다. 멕시코 인들은 대로를 건너는 것조차 불법이었던 지독한 인종차별, 조그만 양철지붕 집에 온 식구가 몰려 살았던 가난과 함께 아버지는 앤소니 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존재였다. 퀸은 고아가 된 유색 인종 소년이 흔히 겪는 험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남자와 재혼한 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퀸은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맡았다. 그는 돈 받고 스파링 파트너를 해 주는 권투선수였고 시멘트 공이자 전기 수리공이었으며 구두닦이였다. 고생 때문에 일찍 성숙한 얼굴을 가지게 된 퀸을 거리 소년들과 구분해 주는 점이 있었다면 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건축물 스케치 대회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퀸이 부정확한 발음을 고치고 오면 조수로 써주겠다고 제의했다. 퀸은 청소를 해 교습비를 벌면서 발음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라이트를 찾아 가는 대신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은 팜므 파탈 이미지로 유명한 여배우 매 웨스트였다. 그녀는 연극 〈깨끗한 침대(The Clean Bed)〉를 제작하면서 스물 한 살의 퀸에게 육십 넘은 노인 역을 맡겼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세실 B. 드밀의 〈평원의 사나이〉에 출연하게 된다. 리얼리티를 목숨처럼 여겼던 드밀은 순수한 샤이엔 족 인디언 배우를 찾고 있었다. 멕시코와 아일랜드, 멕시코 원주민의 피가 고루 섞여 있었던 퀸은 드밀을 찾아가 자신이 샤이엔 족이라고 사기를 쳤다. 그 거짓말은 먹혀 들어갔지만 드밀은 그의 연기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퇴짜 맞을 뻔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게리 쿠퍼. 쿠퍼는 "착하게 생겼는데 한 번 써 보죠"라는 말로 퀸을 구원했고 그 곳에서 퀸은 배우로서의 경력과 함께 첫번째 아내이자 드밀의 수양 딸인 캐서린 드밀을 한꺼번에 얻었다. 그러나 드밀은 배우로서 그랬던 것처럼 사위로서의 퀸도 끝내 좋아하지 못했다.
할리우드에서 소화하기 힘든 외모 때문에 퀸은 갱스터나 인디언을 연기하며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1947년 〈검은 황금 Black Gold〉에서 간신히 주연을 맡았지만 곧 사회주의자로 의심 받아 할리우드를 떠났다. 그러나 연극 무대에서 보낸 그 시절은 퀸에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 곳에서 그는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주연을 맡았고 이전에 차분하게 익히지 못한 연기 수업을 실전으로 대신했다. 다시 돌아온 할리우드는 전과 달랐다. 그는 〈혁명아 자파타〉와 〈욕망의 랩소디〉로 두 개의 아카데미 남우조연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노틀담의 꼽추〉 역시 중년에 이르러 가능했던 명작들. 이탈리아 감독들도 그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검은 피부를 눈여겨 봤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연출한 〈길〉의 차력사 잠파노는 짐승처럼 야비한 겉모습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인간성을 간직한, 어찌 보면 퀸 자신과도 비슷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퀸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가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 말해 왔다. 영화 속에서 조르바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세 살 먹은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세 살 먹은 큰아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경험이 있는 퀸은 "조르바의 춤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출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퀸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처녀성에 강박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캐서린 드밀과 결혼한 첫날밤,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퀸은 신부를 두들겨 팼고 "그 날부터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리타 헤이워드와 캐롤 롬바드, 모린 오하라, 잉그리드 버그만 등 할리우드 황금기의 여배우들이 그의 연인이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는 "한 번도 처녀와 자본 적이 없다"고 안타깝게 회상했다. 그는 또 경멸의 대상이 됐던 멕시코 혈통을 지겨워 하면서도 멕시코의 가부장적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두 번째 아내 욜란다와 이혼할 때, 아들 대니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주 때리고 음담 패설을 늘어 놓았다고 비난했다.
세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정부로부터 열 세 명의 아이를 얻은 그는 "우글거리는 자식들은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81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을 얻은 것이 그에게는 자랑이었다. 젊은 시절 가졌던 미술에 대한 열정을 뒤늦게 되살려 죽기 전에는 매일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입체파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그림은 마치 그 생애처럼 강렬한 색을 품고 있다.
출연 :
줄리아나 마시나
최근작 :
<길>
,
<펠리니의 청춘군상 - 마스터피스 콜렉션>
… 총 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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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펠리니의 청춘군상 - 마스터피스 콜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