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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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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산문집. 시인 신해욱에게 '산문'이란 무엇일까? 시인은 '지금 여기'에서, 육안으로 보며, 마음이든 몸이든 나를 흔든 것들에 대해, 맨얼굴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를 쓸 때는 좀 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육안보다는 현미경과 망원경에 의지해서 쓰는 편이라고.
시인은 일상을 '어떻게' 담아낼까. 시인은 자신에게 감지된 그 파동이, 가능하면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문을 쓴다. 가령 똑같은 피사체를 찍은 사진도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효과가 아주 다르다. 자신이 접한 것의 감흥이 글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 생동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시인은 문장의 순서와 호흡을 많이 손본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편편의 용적이 적으니 아무래도 미미한 파동 쪽에 집중한 편이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뻔한 것들을 붙잡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형식, 그것이 700자라는 정해진 형식이었다. 700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씌어졌을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창조한 셈이다. : 신해욱처럼 자기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유연한 어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무심하게 흘리는 말에도 마음의 깊은 울림이 있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지만 한 편 한 편이 풍요로운 것은 지식을 나열하거나 지식에 의지해서 쓴 글이 아니라 깊은 지식을 지닌 사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뜻이 명확하면서도 시적인 산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신해욱의 산문이 시적인 것은 시적 효과를 의도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와 지혜가 구별되지 않는 자리에 글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신해욱은 교훈과 위로를 말하지 않는다. 적실하고 순결한 말이 교훈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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