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탄생에서부터 한국시리즈 우승과 준우승, 최하위 성적을 비롯 최고의 선수들과 응원단까지 그 역사와 감동의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프로야구 30년을 통틀어 가장 약한 팀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1991년 최초로 홈 관중 백만을 돌파하고 92, 95년, 2008년, 2009년, 그리고 2010년과 2011년까지 무려 일곱 번이나 백만 이상의 관중을 모은 인기있는 팀이다.
자이언츠는 창단한 이래 두 번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8번이나 최하위로 처졌던 팀이기도 하고, 정규리그 최고승률팀 자리에 올라본 역사가 없는 팀이기도 하다. 또 한국프로야구사상 최초로 외국감독을 선임한 전례를 가지고 있기도 한 파격적인 팀으로도 평가된다. 브레인스토어의 한국프로야구단 시리즈 두산베어스와 기아타이거즈에 이어 3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롯데 자이언츠의 역사와 감동의 스토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역대 감독들과 전설적인 선수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를 향한 끊임없는 팬들의 열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
최근작 :<로봇 시대 미래 직업 이야기> ,<도대체 우리는 왜 야구를 보는가> ,<한국현대사 다이제스트 100> … 총 68종 (모두보기) 소개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EBS 등 여러 기관에서 청소년과 어른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논술을 강의했다. 역사, 인물, 음식, 문화 등 폭넓은 공부를 계속하면서 우리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빛나는 이야기를 찾아 다채롭게 소개해 왔다. 그동안 쓴 책으로 『소년과 독립군』『씨앗을 부탁해』『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 등이 있다.
‘최초’ 홈 관중 100만을 돌파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
‘야구의 도시’ 부산이 뜨겁다.
부산 사람이 아니어도 주황색 비닐봉투, 찢어진 신문지만 보면 왠지 모르게 열정이 샘솟는 곳이 사직구장이다. 그리고 그 열기가 하나로 밀집되는 팀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이다. 2006년 타격 트리플크라운, 2010년 9경기 연속 홈런의 세계최고기록, 타격 7관왕까지 이룬 이대호 선수는 부산에서 우는 아이도 이름만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부산의 대통령’ 버금가는 존재일 정도이다.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의미는 시민 모두의 희망이자 용기요, 삶의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열기는 단순히 지금 2011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여름 롯데가 8년 만에 가을야구의 꿈이 영글어가던 그 때, 한 부산지역 고등학교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바라지도, 바라지 않을 수도 없는 한숨을 토로하기도 했다.
“롯데가 4강에 가면, 부산지역 고등학교들 입학성적은 다 망하는 겁니다.”
수험생도, 직장인들도, 어르신들도, 아이들도 부산을 들끓게 하고 미치게 하는 것. 바로 롯데 자이언츠. 과연 롯데 자이언츠는 어떤 팀이기에 이토록 부산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롯데 자이언츠의 탄생에서부터 우승, 준우승, 최하위 기록, 선수회 파동, 선수 트레이드, MVP 등 롯데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담은 책. 《롯데자이언츠 때문에 산다》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부산 연고, 2회의 우승과 2회의 준우승, 8번의 최하위, 끊임없는 열정과 투혼의 자이언츠 그 감동의 다큐멘터리
한국에서 프로야구 출범이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1975년. 그렇게 창단된 한국프로야구에서 롯데 자이언츠 역시 부산 지역 출신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며 22명의 선수들과 계약을 이루어냈다. 당시 그 명단에 한국이 낳은 역대 최고 투수 최동원과 주전포수 심재원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은 치명적이었지만, 대신 국가대표 3루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용희가 선수단의 간판 격으로 존재했다. 그 외에 김용철, 김정수, 김일환, 권두조 등도 당시의 멤버들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첫 경기는 부산에서 열렸다.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 영호남 라이벌, 제과업계 경쟁구도로 이목을 모았다. 이후 OB, 삼미를 모두 이겨 3연승. 롯데는 ‘다크호스’에서 ‘우승후보’로 까지 격상되었지만 다음 날부터 하락해 시즌을 모두 치르고 나서 6개 팀 가운데 5위에 해당했다.
1983년부터 최동원, 심재원, 유두열이 롯데에 등장했다. 당대 최고의 투수와 포수, 외야수였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입단계약까지 맺었던 최동원의 몸값은 박철순의 두 배가 넘는 1억 원(계약금 7천만 원, 연봉 3천만 원)이었지만, 첫해 최동원이 보여준 활약은 기대를 못 미쳤다. 시즌성적 9승 16패. 부진의 이유는 떨어진 구속, 그것은 커브를 비롯한 다른 무기들까지 한꺼번에 무력화하는 요소였다. 그해 팀은 최하위로 처진 채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이후 최동원은 롯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고, 역사 그 자체였다. 최동원을 따라가다 보면 롯데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자이언츠 전설의 투수, 역사 그 자체였던 최동원
1984년은 롯데에게서 잊을 수 없는 해였다. 한국시리즈 최초 우승.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 3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팀의 반열에 오른 해였기 때문이다. 이 우승은 최동원에게도 새로운 힘을 주는 사건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휴식하며 치료하고 재충전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무시무시한 무리를 감행해온 28세의 투수. 그렇게 1980년대 내내 최동원은 롯데의 마운드 자체였고, 혹시 대신할 투수가 있으면 쉬고 대신할 투수가 없으면 던지는 투수였다. 1986년에는 팀 승리의 40%안팎을 책임졌을 정도였다.
최동원은 1970년대 후반부터 근 10여 년간 대한민국에서 야구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고교 2학년 시절부터 계속 늘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1981년 최동원은 전기리그 1차 대회에서 팀의 8승 중 7승을 따냈고, 시즌 내내 팀이 치른 이닝의 60%가 넘는 206이닝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가을에 열린 실업야구 코리언시리즈에서는 8일 동안 치러진 6차전에서 모두 등판해 혼자 3승을 따내며 먼저 두 판을 내준 5전 3승제 승부에서 극적인 뒤집기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진학을 하고 졸업을 할 때마다 ‘역대 최고액’이 걸린 스카우트 파동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어깨에 거액의 보험을 들었다는 가십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연세대 시절 1년 선배 박철순과의 ‘체벌시비’로 팀을 이탈하며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서 비롯된 장외의 입씨름들은 늘 최동원의 압도적인 활약과 기록에 의해 지워졌다.
또 최동원은 선수파동에도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1988년 선수연금 제정, 최저연봉수준 향상 및 연봉인상 상한선 폐지 등 선수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으며 결국 1988년 9월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선수회는 붕괴되고 말았고, 최동원은 198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최동원과 김시진은 ‘삼성 자이언츠와 롯데 라이온즈’의 대결이라는 자조어린 한숨을 야구장에서 뿜어나게 했던 주역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은 진행중이다
롯데가 잊지 못할 또 한 순간은 1992년이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선수는 바로 롯데가 배출한 유일한 신인왕이자 1992년 우승의 선봉장 염종석이었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투수였다. 그해만큼은 염종석이 선동열보다도 나은 성적을 올린 투수가 되었다. 롯데는 빙그레를 맞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그 해 롯데는 기본 전력이 좋았던 빙그레, 해태,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약한 모습이었지만 약체 팀 빙그레, 태평양, LG, 쌍방울, OB만 만나면 강해졌다. 게다가 홈 경기에서 유독 좋은 경기를 펼치자 팬들은 더없이 열광했다. 이미 1991년에 100만 관중을 돌파했던 롯데는 1992년에 다시 120만 관중을 넘어서는 인기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서울 LG와 두산이 각각 60만과 50만 수준의 관중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그 인기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이어 1995년과 1999년 준우승. 그리고 2011년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2006년 타격 트리플크라운, 2010년 사상 최초 타격 7관왕, 세계프로야구 최초의 9연속경기 홈런 기록 등을 보여준 롯데 자이언츠 최강의 타자 이대호 선수를 키워냈으며, 그간 거쳐간 감독만 10여 명, 한국야구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를 발탁하기도 했다. 그동안 정규리그, 올스타전 MVP에서도 많은 선수들을 배출하며 우리나라 최고 인기 팀을 증명했다.
최동원, 김용희, 김용철 등이 이끌었던 1980년대 초반의 1세대, 1990년대 초반의 2세대, 주형광, 강상수, 마해영, 박현승 등 1994년과 1995년의 3세대, 거기에 이대호와 손민한을 공수의 축으로 삼았던 2000년대 중반 이후의 4세대가 롯데의 살아있는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롯데의 전설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저자 김은식은 글을 마치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롯데 팬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롯데 자이언츠에게 최동원의 시대와 염종석의 시대와 박정태의 시대, 그리고 ‘888 8577’의 시대와 로이스터의 시대는 곱씹어 자양분으로 만들 소중한 경험이고 교훈들임에 분명하다. 그것을 더는 놓치지 말아주기를, 그래서 ‘애증’이 아닌 ‘사랑’을 받는 팀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 날마다 사직야구장의 3만 석을 가득 채운 채 울고 웃는 팬들이 원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