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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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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봉의 개인전 [hey](2016.9.18~10.2, 지금여기)와 연동된 책으로, 작가의 두 번째 사진집이다. 고천봉은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을 오갔던 2007년부터 일상을 포착하는 작업을 해 왔고, 이 중 252장의 사진을 추려냈다.
책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모든 장의 첫 페이지에는 '想(생각 상)'이라는 글자와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만이 표기되어있을 뿐이다. 이는 언어로 이미지를 해석하는 읽기 행위를 지연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지면 위에 나열된 이미지들의 시각적 운율과 뉘앙스에 더 집중하도록 만든다. 각 장에 배열된 사진들은 서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저자는 "의미로 읽는 대상이 아니라 시각적인 음성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있음을 밝힌다. 소설가 한유주는 이 책을 보고 '남이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여행하는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면, 고천봉 작가는 무엇을 볼까" 상상하며 '나는 사진가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을 썼다. 이 글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소설가와의 협업을 통해 <Tree, Body and Snow>는 이미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과 몇몇의 언어들, 그리고 한 편의 소설은 서로를 마주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예술적 결과물로, 독자를 완전히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 Colour : 사진을 들추다 보니 아주 익숙하고 아주 낯선 풍경이 겹친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것은 사진입니다.” 사내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것은 사진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하늘의 달을 가리켰다. “사실 중요한 것은 검은 허공입니다.” 조그만 사진기를 든 한 사내와의 대화를 상상하며 想이란 문자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의 제목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문자가 아닌 사진일지도 모르겠다. 한문도, 한글도, 영어도 아닌 그저 <Tree, Body and Snow>. 이 책의 사진과 글 그리고 디자인과 물성. 집요하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진을 사진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누군가의 무의식 혹은 기억을 염탐하는 듯한 9장으로 구성된 고천봉의 나른한 사진들. 그리고 그 시리즈 마지막에 12페이지의 지면을 배정 받아 자리해 있는 한유주가 쓴 '수면'과 '이면'에 관한 단편소설. 고천봉의 사진과 한유주의 소설은 '허구'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그렇게 납작하게 포개져 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한 편의 '사진소설'이 여기 탄생했다. : 습관처럼 매순간 카메라와 동거하며 스냅샷으로 건져낸 고천봉의 일상은 한 장 사진으로는 의미가 있거나 없다. 어떤 장면은 웃기고, 어떤 사진은 노출이 완전히 날아갔으며, 어떤 풍경은 몹시 상투적이다. 그러나 이 산만하고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앞뒤로 연결되는 순간 종횡무진의 시각 여행이 시작된다. 한국과 중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자랐던 그의 이력처럼, 사진 속 장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 채 속도감과 긴장감마저 지닌다. 『Tree, Body and Snow』에서 사진은 본 것의 기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연상 게임이 된다. : 이 사진가가 일상에서 행했을 무수한 행동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적어 내려갔다. 사실은 그 자리에서 몇 천 개도 더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에는 그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동사들 (산의 정상까지 올라간다, 바닥의 나뭇잎을 발로 쓱 치운다, 귀를 살짝 문다, 코피를 흘린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동사들 (탄다, 내린다, 쫓아간다, 이해한다)도 있었다. 왜 끝없이 떠오르는 것일까? 나열해 놓은 동사들 사이에 갇혀 혼란을 느끼다가, 나는 어느새 그것들을 조합, 재조합해 나가면서 규칙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각각의 동사들이 이제 내게는 고천봉을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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