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라는 주제를 매력적으로 펼쳐 보이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존 디디온이 5년 만에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 2004년에 40년 동안 인생의 동반자였던 존 디디온의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은 저녁 식탁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 직후, 외동딸 퀸타나는 폐렴으로 인해 기약 없는 뇌사에 빠진다.
남편과 딸 퀸타나 루와 함께 살았던 시절의 기억들로 풍성하게 직조된 존 디디온의 <푸른 밤>은 그녀의 생각들, 두려움들, 그리고 모성과 질병과 노화에 대한 의심들을 대상으로 한 격렬하도록 개인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다.
묵주의 구슬들을 만지듯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딸의 일생과 부모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추하는 디디온은 모든 부모들이 직면하는 질문들과 씨름하며, 인정은 하되 수용할 수는 없는 그녀 자신의 노화를 숙고한다. '푸른 밤'은 사월이 지나고 오월이 올 무렵,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가깝게 느껴지는 그 무렵 처음 의식하게 되는, 강렬한 푸른색으로 빛을 발하는 저녁 시간을 가리킨다.
존 디디온이 서문에서 "이 책의 제목을 '푸른 밤'이라 붙인 것은, 쓰기 시작했을 당시 내 마음이 갈수록 질병, 약속의 종말, 남은 날들의 감소, 쇠락의 불가피성, 빛의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푸른 밤은 빛의 소멸의 반대인 동시에 그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라고 했듯이, <푸른 밤>은 예리하고 놀랄 만큼 솔직하게 씌어진, 딸의 죽음에 관한 애가哀歌이자 상실과 노화에 대한 아름답고 고매하고 시적인 만가輓歌이다.
최근작 :<내 말의 의미는> ,<상실> ,<푸른 밤> … 총 215종 (모두보기) 소개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조앤 디디온은 뉴 저널리즘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글은 1960년대 반문화로 대중을 끌어당겼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녀만의 스타일로 특히 여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녀는 1950년대 《보그》지에서 후원한 에세이 공모전에 우승하면서 잡지 편집자가 되었으며, 그렇게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64년에 당시 《타임》지의 기자였던 존 그레고리 던(John Gregory Dunne)과 결혼했다. 1966년에는 딸을 입양했는데, 퀸타나 루 던(Quintana Roo Dunne)으로 이름 지었다. 남편 존은 2003년 12월 30일, 독감에 걸렸다가 패혈증성 쇼크에 빠져 건강이 악화한 딸을 병실에서 면회하고 돌아온 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딸 퀸타나는 존이 사망한 후에도 건강을 되찾지 못했으며, 결국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조앤 디디온은 2021년 타계하기 전까지 사회,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글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있는 그대로 대처하라(Play It as It Lays)』, 『푸른 밤』 등이 있다.
남편 존 사망 후 1년간의 회고록인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로 전미 도서상(2005년)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에는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최근작 : … 총 44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출판 기획 및 번역을 하고 있다. 《밤에 우리 영혼은》 《푸른 밤》 《빅 서》, 앨리 스미스의 《가을》 《여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공空에 부치는 애가’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수필가 존 디디온이 5년 만에 발표한 에세이《푸른 밤》은 “2010년 7월 26일. 오늘은 그 아이의 결혼기념이었을 날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그 아이는 존 디디온이 서른두 살이던 1966년에 입양한 딸 퀸타나 루 던이다. 태어난 바로 그날 존 디디온과 그녀의 남편이자 작가인 존 그레고리 던에게 온 아이이다. 이 책은 40년 동안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온 남편이 저녁 식탁 앞에서 심장마비로 죽기 며칠 전에 시작된 감염으로 서른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퀸타나 루 던 마이클의 죽음을 다룬, 존 디디온의 가슴을 사로잡는 회고록이다.
에세이 《푸른 밤》은 2003년 7월 26일 퀸타나와 제리 마이클이 결혼식을 올린 성 요한 성당에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오이와 물냉이를 넣은 샌드위치와 페이야드 제과점에서 가져온 복숭앗빛 케이크, 그리고 핑크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박스에서 레이를 꺼내 물을 털어내는 퀸타나의 땋은 머리채에는 스테파노티스가 꽂혀 있으며 면사포를 통해 언뜻 플루메리아 문신이 엿보였다. 스테파노티스는 퀸타나가 7학년 때 이사했던 브렌트우드 파크 집에 있었다. 퀸타나의 열여섯 번째 생일파티에는 오이와 물냉이를 넣은 샌드위치가 나왔다. 세 살이나 네 살 또는 다섯 살 때 여행했던 하와이에는 레이가 있었다. 브렌트우드 파크 집에는 라벤더도 있었고, 박하꽃도 있었고, 분홍목련도 있었다. 생의 푸르름이 묘사된다. 꽃들의 싱싱하고 비옥하고 햇살 가득한 삶이 하나하나 불리워지고 이름 붙여진다. “자주군자란이 있었고, 나일강의 백합이 있었고, 긴 줄기에 매달려 하늘거리는 짙푸른 스타버스트가 있었다. 해질녘에만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희고 작은 꽃송이들의 무리, 백접초가 있었다.” 그러나 존 디디온이 퀸타나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아름다움과 삶의 격렬함을 묘사할 때조차 우리는 상실이라는 진실을 감지할 수 있다. 햇빛이 사라지면 조그만 흰 꽃들과 짙푸른 스타버스트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디디온은 햇빛은 어김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킨다.
미국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디디온은 “그 아이는 입양되었고, 그 아이는 내가 보살피도록 내게 주어진 아이였어요. 그리고 나는 그것에 실패했어요. 따라서 무거운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푸른 밤》은 속죄를 구하는 책,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경험하는 근본적인 변화에 관한 회고록으로 규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본질은 “딸의 죽음 이후 상실에 대한 통렬한 탐구이자 죽음과 시간에 대한 우울한 명상”이다.
“그날 암스테르담 에비뉴를 걷다가 우연히 신부파티 장면을 본 사람이 있다면 신부의 어머니는 2003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이닥칠 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을까? 신부의 아버지는 저녁 식탁 앞에서 쓰러져 죽고, 신부는 중환자실에서 인위적 혼수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를 통해 간신히 숨을 쉴 뿐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는 그런 일들을? 그것을 시작으로 이어진 여러 차례의 위기 끝에 20개월 후 결국 신부의 죽음으로 귀결된 그런 일들을?”
“표면적으로 사랑하는 자식의 상실에 대해 우아하고 지적이고 정밀하게 씌어진 이야기로 보이는 이 작품은 실제로는 바라보이는 심연에 대해 우아하고 지적이고 정밀하게 씌어진 일별이며, 이 책은 우리에게 비극에 대한 준비는, 그것으로부터의 보호는, 따라서 위로는 불가능한 것임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만든다.”고 한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서평처럼 이 책 《푸른 밤》은 예리하고 놀랄 만큼 솔직하게 씌어진, 딸의 죽음에 관한 애가哀歌이자 상실과 노화에 대한 아름답고 고매하고 시적인 만가輓歌이다.
1966년 지인이 소개해 준 의사가 디디온과 그녀의 남편에게 입양할 만한 아기를 찾았다는 전화를 한다. “나는 느닷없이, 산타모니카의 성 요한 병원에서, 이 완벽한 아기를 건네받았다.” 자신들이 살던 할리우드 커뮤니티에서 그 아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디디온은 침착하고 품위 있고 대화하는 듯한 문체로 기록하고 있다. “그 아이의 옷장에는 바티스트와 리버티 론 천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아기 드레스 60벌이(나는 세고 또 세기를 되풀이했다) 미니 옷걸이들에 걸려 있었다.” 신생아 엄마의 조금 수줍은 기쁨. 그 조그만 드레스들의 황홀한 신선함. 신생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서 아이 용품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초보 엄마 디디온이었다.
완벽한 아기와 양부모를 점검하러 방문한 사회복지사를 디디온은 잔디밭으로 조심스럽게 안내한다. “입양 후보는 우리 발치에서 놀았다.” 60벌의 드레스 중 하나를 입고.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면밀하게 선정한 장소인 이 잔디밭에 갑자기 뱀이 나타난다. 그것을 발견한 가정부가 얼른 입양 후보를 들쳐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디디온은 입후보 정치인처럼 거짓 핑계를 꾸며내야 한다. 그건 그냥 게임이라고 사회복지사에게 말한다. 뱀은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뱀은 없다고. “퀸타나 루의 정원에 뱀은 있을 수 없었다.” 디디온은 쓰고 있다. “나중에야 나는 내가 그 아이를 인형처럼 길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엄마로서의 첫 해는 그녀 자신의 철없음에 대한 동경 어린 책망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리석음에 가까운 위험한 철없음이라고, 그녀는 지적한다. 아기를 입양한 해에 그녀는 남편과 사이공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해 1966년은 베트남 주둔 미군의 수가 40만에 달하고 B-52 폭격기가 북부지역을 폭격하기 시작한 해로, “아기를 데리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떠나기에 이상적인 시기는 아니었다.” 쓰기로 계약한 책을 마무리 지어야 했던 상황 때문에 결국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었다고 털어 놓는다. “이 시절은 새라 맨키비츠의 디너용 민튼 접시에 내기 위해 프라이드치킨을 만들고 사이공 여행에서 아름다운 여자아기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포르토 양산을 사는 것 사이의 어느 지점에선가 내가 ‘엄마노릇’의 주요사항들을 완수했다고 실제로 믿고 있던 날들이었다.”
그건 어쩌면 착각이었으리라. 퀸타나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아기라기보다는 그저 예쁘게 차려 입히는 인형처럼 생각했었다고 디디온은 반추한다. “나는 그 아이의 옷차림이 완벽하도록 신경을 썼어요. 그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혔지요. 그 아이는 내게 인형이었는데, 돌아보면 그건 내게 그 아이란 존재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주었던 것 같아요. 나는 그 아이를 성장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네 살 때 그 아이는 이미 성장한 인간이었는데 말이죠.”
아이를 위해 ‘직업’ 생활과 ‘사적’ 생활을 구분하고자 했던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직업 세계를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 술과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이 퀸타나의 삶에 암운을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디디온은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며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지를 자문한다. 예상대로 입양에 따른 문제들이 발생했다. 퀸타나가 취직을 해서 집을 떠난 후, 생모와 친언니가 연락을 해왔고, 퀸타나의 표현에 의하면 “멍청이임에 틀림없는” 아버지도 연락을 해왔다. 존 디디온은 퀸타나가 이 모든 혼란을 혼자 감당하며 이제까지 살아 온 세상과는 너무도 낯선 가족과 소통하기 위하여 애쓸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음을 자각한다. 하지만 ‘엄마노릇’을 위한 디디온의 모성적 헌신과 애정은 책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솟구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엄마노릇의 ‘다른’ 스타일이었으리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던 시간이자 시기이자 10년 세월... 자동차들과 수영장과 정원이 있었다... 영국풍 무명이나 중국풍 린넨으로 만든 장식품들도 있었다... 경계용으로 한쪽 눈만을 뜬 채 층계참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던 부비에 데 플랑드르 종 개도 있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기억은 조정하고, 기억은 우리가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순응한다.”
남편과 딸이 떠난 지금도 그녀의 서랍들과 벽장들은 “잘못된 믿음의 퇴적물”로 가득 차있다.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념물, 그들의 물건들을 보존함으로써, 사람들이 온전히 존재하게끔 할 수 있다고, 그들을 곁에 붙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남편 것이던 낡은 버버리 레인코트 세 벌. 딸의 감색 반바지와 퀸타나가 학교 숙제로 제출했던 <더버빌 가의 테스> 리포트. “이제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보냈던, 우리의 이름이 박힌 결혼식 청첩장들도 있다.” 서랍에 쌓여있는 기념물들은 “그 순간을 떠올려주는”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그녀는 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실제로는 그 순간이 여기 있었을 때 내가 그것을 얼마나 불충분하게 인식했는지를 뚜렷이 알려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채송화, 삼나무 데크, ‘크래프츠먼’ 디너 나이프, 그 전에 왔다 간 삶과 삶들의 현실은 세 개의 진주알로, 아기 젖니로, 잃어버린 아이의 유골함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을 ‘푸른 밤’이라 붙인 것은, 쓰기 시작했을 당시 내 마음이 갈수록 질병, 약속의 종말, 남은 날들의 감소, 쇠락의 불가피성, 빛의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 누구도 막아줄 수 없는 위협이다. 시간은 문자 그대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버린다. 남는 것은 기억들이다. “한 시기가 있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퀸타나의 죽음 이후 딸의 부재는 디디온의 삶에서 가장 큰 현재가 된다. 이 책은 스스로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혼돈을 이해하고 헤치고 나올 수 있게 인도해줄 서사도, 어떤 의미도, 어떤 결말도 없어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그 대신 주문呪文과 같은 성격을 띤다. 이 책은 아름답게 들끓어 오르는 다성악적 송덕문이자, 답을 이미 알면서도 그 답이 거절임을 알면서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탄원의 기도다.
《푸른 밤》에서 존 디디온은 저널리즘에서 구현했던 엄격한 표준을 그대로 적용하여 자신의 생을 면밀히 관찰하고 정교하게 기록한다. 날카로우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는 문장 안에서 시처럼 살아 움직인다. 마치 한 편의 산문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푸른 밤》을 쓰기 전까지는 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는 존 디디온은 이 책에서 용감하리만치 솔직하고 매력적인 문체로 딸 퀸타나의 비극적인 죽음을, 함께 한 행복한 날들에 대한 기억을, 그리고 노화에 대한 불안을 심오한 명상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나 자신이 그 아이의 유골을 벽 안에 안치했다.
나 자신이 여섯시에 성당의 문들이 잠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내가 지금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연약함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안다.
두려움은 상실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상실된 것은 이미 벽 안에 있다.
상실된 것은 이미 잠긴 문들 뒤에 있다.
두려움은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다.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의 전 생애에 내가 그 아이를 보지 않는 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