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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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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거장의 대접을 받고 있는 루스 렌들의 장편소설.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활자 잔혹극>은 예전에 국내에 한번 <유니스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그때 이 작품은 사회적 통찰과 범죄극을 교묘하게 엮어내는 작가의 구성력에 힘입어 물밑에서 호평을 받았고, 이번에 북스피어에서 선보이는 건 새롭게 번역한 판본이다.
이 책의 중심인물인 유니스 파치먼은 문맹이지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니스는 살인을 한 번 저질렀고, 지속적인 공갈도 여러 차례 행했지만 아무에게도 탄로 나지 않고 자신만의 조그마한 세계에서 안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왜 굳이 커버데일 가족의 입주 가정부로 들어갔을까? 그건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니스는 문맹이었고 그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감추려 했기 때문에, 하다못해 공공서류를 읽고 처리하거나, 신청서를 작성하여 TV를 빌리거나 사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연유로, 커버데일 저택에서 입주 가정부로 살게 되면 자연스레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자신은 활자의 세력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커버데일 가족은 유별나게 독서를 많이 하며, 뛰어난 학력과 그들만의 특권 의식을 가진 중산계급이었다. 처음에 유니스는 그들과 잘 지내는 듯했다. 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의 완벽한 일솜씨와 아랫사람다운 묵묵한 태도에 감탄하고, 유니스는 이 가족을 공기처럼 생각하며 자신의 일과 텔레비전 시청에 몰두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도 곧 깨지게 되는데… 활자 잔혹극
: 『활자 잔혹극』이 뛰어난 이유를 요약해서 말하면, 먼저 문맹이 결과하는 사회생활의 기술적 곤란만 아니라, 문맹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피해를 보여준 점이다. 그리고 거기 머물지 않고 글을 읽는 독자들이 활자와 책에 대한 턱없는 신뢰와 교만을 피할 수 있도록, ‘독서광’의 비인격적인 실례마저 함께 보여준 데에 있다. 작가는 문맹만 아니라, 책에 코를 박은 채 타자나 현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탐서가의 병폐도 함께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 잔인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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