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의 자전적 에세이. 올해로 80세인 그가 기억을 더듬어 지난 50년간 걸어온 무대인생과 인생무대를 재구성했다. 500여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땀내 나는 현장을 이야기하며 그가 만든 사람, 그를 만든 사람들 이야기와 그가 CEO로서 활발하게 작동하게 만든 공연장, 그가 만든 공연예술 무대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반세기 동안 척박했던 문화예술계를 비옥하게 다져온 한국문화예술의 산증인답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에피소드로만 읽기에는 마냥 소중한 경험이며 노하우로, 공연예술계를 꿈꾸는 이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어떻게 80세인 지금까지 현직 공연장 CEO로 살아가는지, 그가 가진 결기를 읽을 수 있다.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태평무의 대가 강선영, 지휘자 정명훈, 발레리나 강수진 등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온 예술인들과의 인연과 그때의 무대 상황, 그리고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었는지를 술회한다. 저자가 숱한 공연을 함께 만들었던 참모들, 지금은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CEO가 된 인재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의 중반에는 그가 책임을 진 공연장과 그가 만든 공연 이야기가 본격화된다. 무대 흐름에 맞춰 컬러 필름을 바꾸고 출연자의 얼굴을 향해 조명 방향을 돌리는 등 지금 기술로 본다면 한없이 어설프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1960~70년대 무대공연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다.
<일리아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은 <일리아스>의 백미로, 태풍의 눈이다. 위대한 서사시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제시하며 인간의 삶과 심장을 노래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를 숭상하고 싸우는 인간이 헥토르다. 반면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째로 불타고 곧 스러질 한 시대(귀족주의)에서 마지막 횃불처럼 빛난다. 역사적 지정학적 경제적 근거에 이르기까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여럿이지만 전적으로 신화에 의지한 읽기로, 전쟁이 한창인 두 나라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헬레네 등 주연급 조연들의 속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