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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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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아동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권정생 선생 1주기를 맞아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 '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의 글 몇편과 작년 '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였다.
저자인 자신의 생애와 생활의 단상을 서술한 산문들을 엮은 이 책은 빨갱이의 자식으로 태어나 범죄자가 되 버린 목이, 첫날밤도 못 치른 채 신랑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시부모를 봉양해온 할머니가 효부상을 거부한 사연, 인공수정을 당하는 태기네 암소의 눈에 맺힌 눈물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실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울러 성전 건축에 열 올리고 빨간 십자가로 불야성을 이룬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나, 소유욕 때문에 병들어 가는 자연,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강아지 똥>, <몽실 언니>같은 선생의 동화처럼 마음을 울리는 귀한 책이다. :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10여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해 전 문화방송에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권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우리들의 하느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 ‘쉼’이라는 주제로 소개한 책들 :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과 그 글이 일치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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