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_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
1_ 추기경과 큰스님의 '미소'
'야만의 땅'으로 귀향한 슬픔|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추기경 뒤에 숨은 저 '골리앗'을 보라|대한민국 사법부는 국회와 닮은꼴인가|유령의 피울음|슬금슬금 활개치는 공안세력|미 전폭기 '집결'과 전쟁불감증|보안법 폐지는 '보수'의 과제다|왜 대법관들은 '용기'가 넘치는가|추기경과 큰스님의 '미소'|조선일보의 섬뜩한 '내전 선동'|조선일보중앙일보는 주체사상이 두려운가|'군사정권의 단물'을 먹은 자들|깨져야 할 두 신화, 미군과 남침|미국과 '우방'이 되고 싶은 평양|대한민국 '주적'은 평화위협세력|대한민국 안보 정말 '이상 없음'인가|해방 60돌, 대안을 세울 때다|맥아더 찬양하는 친미언론의 잇속|김정일 총비서에게 띄우는 편지|삼류언론의 얼치기 논설주간|그들의 '인권론'은 진실한가|비전향 장기수 묘역 훼손 유감
2_'검은' 라이스의 '하얀' 제국주의
누가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가|벌거벗은 럼스펠드와 잉글랜드|피로 물든 서울 도심을 상상하라|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통곡, 김선일|공화국의 밤|나는 조지 부시가 두렵다|대한민국 '간판'을 내리는 슬픔|중국 공산당의 타락|누가 국군을 '십자군'으로 만들었나|누가 '이완용'의 길을 걷고 있는가|검은 라이스의 하얀 제국주의|이 땅에 '슈퍼미군'은 필요 없다|미국은 '한국 언론운동'에서 배워라|노 대통령 '묵살'하는 미국의 장군들|일본 '독도야욕' 뒤엔 늘 미국이 있다|'폭정의 본거지'는 미국?|'미국 중심 인사'와 홍석현 주미대사|'폭군' 부시와 노무현, 김정일|'전쟁위기 칼럼'이 근거 없다?|'거짓말쟁이' 부시와 '사기꾼' 블레어|파병안에 대해 찧고 까불지 좀 말라?|부시 발언, 왜 한국과 일본서 다른가|버시바우 미국대사는 행복하다
3_ 윤똑똑이 한국 언론의 '이중국적'
잃어가는 '권위'가 어리석은 대중 탓인가|조선일보가 새겨야 할 '교황의 충고'|한국 언론은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가|언론개혁, 시민단체에 기대지 말라|진보운동과 안티조선의 한 길|그렇다, 공영방송이 문제다|동아일보는 왜 몰락했는가|동아일보의 가당찮은 'KBS 사장 비판'|열린우리당, '배신'인가 '본질'인가|누더기 신문법과 '신문개혁'의 길|신문개혁과 열린우리당이 할 일|'상류층'의 타락과 김대중 기자|신문개혁, 또 '선포'로 입법할 셈인가|한국 언론 속에 똬리튼 '이중국적자'들|막가는 조선일보 어디까지 갈까|누가 기자들에게 비명을 지르게 했나|방송을 '자본의 품'에 넘길 셈인가|누가 이상호 기자를 협박했는가|홍석현 대사, 사퇴하고 신문 손떼라|중앙일보 사설, '사과'인가 '협박'인가|대사 사퇴로 그칠 일인가|'언론사 고위간부' 김대중과 X파일|신문의 위기 자초하는 '비판신문'
4_ 저 상여에 장송곡을 부르라
한국 보수주의의 장송곡|'보수세력 살리기', 그 유행과 위선|박정희와 김재규, 그리고 영남정서|'개혁세력'은 자기 개혁부터 하라|부자와 여자|왜 유영철에만 '분노'하는가|중앙일보 '정운영'을 애도함|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됐다?|누가 영남을 모욕하는가|노무현, 이건희 그리고 이남원|실체 없는 좌우갈등에 '개혁' 실종|박정희가 살해한 '영남의 양심'|열린우리당 '박근혜 비판'의 조건|고대 총학생회에 박수를 보내는 까닭|'고1 촛불시위' 누가 이용하나|무상의료무상교육이 비현실적인가|사법부의 민주노동당 죽이기?|'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대체 지금 누가 집권당인가|그들의 '검찰독립' 외침에 헛웃음 나온다|누가 지금 '혁명전쟁'을 하고 있는가|'교수 사냥' 실패하자 '교사 사냥'인가|박근혜 대표와 "잘못 알고 있는 국민"
5_ 우리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메기' 이해찬과 '미꾸라지'|'노사정 대타협'의 위선|참여정부의 공무원노조 '사냥'|공무원노조를 보는 '싸늘한 눈길'|누가 민주노총에 돌을 던지나|2004 세밑 '예수'의 죽음|김대환 장관의 '부라퀴 현실주의'|노조와 재벌, 그리고 부자신문의 이중잣대|기아자동차 입사비리와 '불순한 의도'|조선일보중앙일보, '도덕'은 올가미인가|'비정규직 확대' 누가 막을 것인가|이 땅에 민주주의는 살아 숨쉬는가|참여정부 노동정책 수정 불가능한가|칼로 동맥 그으며 '기자'를 찾은 까닭|노무현 대통령과 노사정 대타협|'김대환이목희', 변절인가 욕망인가|'노동귀족론자'들의 이해 못할 침묵|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가|노 대통령의 '삼성 구하기'를 개탄함|경찰은 때리고 노동부는 "따따따"|'빼빼로데이'가 슬픈 까닭|이몽룡 앞에 부끄럽다|맞아죽은 60대 농민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6_ 누가 권력을 주었는지 잊었는가
하야인가 부활인가, 갈림길의 노무현|탄핵론자들이 야당 정서를 부추기는 속셈|저 새벽의 민주당을 보라, DJ에 묻는다|촛불과 불길|촛불이 태워야 할 저 '검은 장막'|촛불 속에 아른거리는 유령들|미완의 혁명|조용한 혁명|노무현의 부활|수도이전과 언론개혁의 '관계'|대통령과 총리에게 철학은 있는가|대체 누가 뭘 개혁한단 말인가|대통령의 2주년 국정연설 '유감'|'빅딜 논쟁' 과연 소모전인가|청와대, 왜 쓴소리에 귀막는가|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분노 해소'|노 대통령의 엉뚱한 '지역구도 극복'|노 대통령에게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누가 권력을 주었는지 잊었는가|'연정론'이 파묻고 있는 절박한 쟁점들|권력의 단맛에 취한 대통령과 총리|노무현 대통령의 "죽여줍디다"|'구국의 객기', 새해도 물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