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 묘청, 정여립, 홍경래… 이 이름들에서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역모자, 혹은 모반자란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자신들의 거사를 성공시켰다면 역사는 이들을 과연 '모반자'라 부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들이 모반자로 남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패자'라는 점에 있다.
물론 이러한 논리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접하는 역사라는 게 사실상 승자들에 의해 일정정도 '해석되고 굴절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지금껏 '모반자'라는 이름을 천형처럼 지니고 있던 17명의 인물들에게 항변할 기회를 제공한다.
책에는 대동사회'를 꿈꾸며 체제 변혁을 이루려 했던 정여립, 세도권력과 지역차별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위해 난을 일으킨 홍경래 등 혁명을 꿈꾼 이들 뿐 아니라 비담, 이자겸, 정중부처럼 오로지 권력에 대한 야망이 동기가 되어 모반을 꿈꿨던 이들, 그리고 이징옥이나 홍륜처럼 살아남기 위해 역모을 시도했던 이들 등 다양한 유형의 모반자들이 등장해, 왜곡되어 서술된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승자의 기록에서 축소되고 왜곡되어 왔던 모반사건을 새롭게 바라본 이 책은 '역사 바로 보기'류의 책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빈약한 근거와 성급한 논리 전개)를 무사히 비껴 나간다. 내용의 밀도가 떨어지는 글이 없진 않지만 글을 풀어나가는 논리가 꽤 튼실한 편이고, 당시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대적 갈등과 주인공들의 좌절된 꿈을 짜임새 있게 직조해낸 글 솜씨 또한 손에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요소.
실패한 정치적 사건, 즉 모반을 꿈꾸고 일으킨 자들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가치 평가를 무조건 뒤집기 위해서가 아니다. 좀더 실체에 가까운 역사상을 재구성하고, 또 역사 속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승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패자의 입장에서도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실패한 반역자들의 역사를 추적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질정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자의 영광만이 아니라 실패한 쓰라림의 역사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더 좋은 교훈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