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화석이 된다>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외수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잊고 있다. 소설로 데뷔하기 전 그는 시쓰는 청년이었다. 비록 그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지만, 서정이 넘실거리는 시집을 내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책은 자신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까지 함께 수록한 시화집이라고 하니, 어쩜 작가는 소설이라는 고갯길을 돌고 돌아서 다시 시쓰는 청년시절로 되돌아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앞머리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단어도 눈물을 적시지 않고 원고지에 파종하면 말라죽는다"라는 다소 선언적인, 한편으로는 주술적인 글귀가 적혀 있다. 작가 스스로 이 점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님 자신의 시가 그처럼 '눈물을 적시'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는 시집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터...
그럼,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시집 전체에서 가장 진솔하게 느껴지는 시는 「구름 걸린 미루나무」라는 시다. 전문 중에서 한 부분만 읽어보면 이렇다.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 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다른 시편들에서는 그대에게 향하는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그리움을 해맑은 미소년의 감수성으로 노래한 반면에 이 시에서만큼은 쉰을 넘은 작가의 실제 나이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가 여리고 슬픈 감수성의 소유자임은 어쩔 수 없지만 모든 시들이 그 때문에 똑같아진다면 아무래도 시 읽는 맛은 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똑같기 만한 시편 사이사이에서 가끔 「구름 걸린 미루나무」처럼 (조금이라도)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만큼 이 시집의 흠집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음 「시간 퇴행」이라는 시에서도 여느 시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시구들이다.
내 시간의 폴더에는
불러오기 파일이 손상되고
어느 새
무서리 내리는 지천명
잠결에 듣는 바람소리에도
온 생애가 펄럭거리네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젊은날을 회상하면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돌출하는 메세지
'당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머리도 감지 않고, 철문을 걸어 잠근 채 골방에 엎드려 지낸다는 이 괴짜 작가도 이제는 최신형 평면 모니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이 시는 바로 그런 현실을 시속에 끌...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외수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잊고 있다. 소설로 데뷔하기 전 그는 시쓰는 청년이었다. 비록 그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지만, 서정이 넘실거리는 시집을 내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책은 자신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까지 함께 수록한 시화집이라고 하니, 어쩜 작가는 소설이라는 고갯길을 돌고 돌아서 다시 시쓰는 청년시절로 되돌아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앞머리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단어도 눈물을 적시지 않고 원고지에 파종하면 말라죽는다"라는 다소 선언적인, 한편으로는 주술적인 글귀가 적혀 있다. 작가 스스로 이 점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님 자신의 시가 그처럼 '눈물을 적시'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는 시집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터...
그럼,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시집 전체에서 가장 진솔하게 느껴지는 시는 「구름 걸린 미루나무」라는 시다. 전문 중에서 한 부분만 읽어보면 이렇다.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 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다른 시편들에서는 그대에게 향하는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그리움을 해맑은 미소년의 감수성으로 노래한 반면에 이 시에서만큼은 쉰을 넘은 작가의 실제 나이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가 여리고 슬픈 감수성의 소유자임은 어쩔 수 없지만 모든 시들이 그 때문에 똑같아진다면 아무래도 시 읽는 맛은 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똑같기 만한 시편 사이사이에서 가끔 「구름 걸린 미루나무」처럼 (조금이라도)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만큼 이 시집의 흠집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음 「시간 퇴행」이라는 시에서도 여느 시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시구들이다.
내 시간의 폴더에는
불러오기 파일이 손상되고
어느 새
무서리 내리는 지천명
잠결에 듣는 바람소리에도
온 생애가 펄럭거리네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젊은날을 회상하면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돌출하는 메세지
'당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머리도 감지 않고, 철문을 걸어 잠근 채 골방에 엎드려 지낸다는 이 괴짜 작가도 이제는 최신형 평면 모니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이 시는 바로 그런 현실을 시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포행」이라는 시가 또 있다. 「포행」은 이 시집 전체 중에서도 가장 뜨듯한 시라고 할 만한데, 다음에 시집을 또 낸다면 이런 시들로만 가득 채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어느 정도의 위험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불특정한 대상을 향한 그리움보다야 낫겠지만 이런 깨달음조차도 상투적으로 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선율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이외수는 지금까지 늘 해왔던 방식으로밖에는 글을 쓰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바로 시 옆에 붙은 그림에 대해서도 말해야겠다. 시화집이라고 해서 그림이 대문짝 만하게 실려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삽화 수준의 작은 그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림은 보기에도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 혹 이외수가 가난했던 시절에 이런 자디잔 삽화 그림으로 돈벌이를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아주 못생긴 그림들도 아니어서 이외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사고 싶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림을 흘겨보는 것은 보통의 시집들 즉, 편집자가 신경 써서 편집한 사랑 시편 같은 시집에서도 이런 그림들은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걸 거창하게 시화집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그림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이처럼 이 시집에는 이외수만의 감수성(이유 없는 슬픔이나 불특정한 대상을 향한 그리움 또는 헤어날 길이 없는 가난에 대한 성토) 등이 예외 없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한 켠에서는 다소 낯선 시들이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이 시집은 좋기도 하고 또 나쁘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만일 이 책을 읽을 만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전과는 (아주 조금) 색다른 이 몇 편의 시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
최성혜 (
im119@aladd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