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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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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뉴저지에 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장은아의 첫 장편소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주인공 이름을 외할머니의 실명인 ‘지봉임’으로 설정했으며, 그 당시의 자료들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고 마무리 하는데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과 전쟁, 그리고 전쟁 그 이후를 견뎌낸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다. 그중에는 시류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친일파로 지목된 사람도 있으며, 얼떨결에 항일을 도운 사람들도 있다. 해방 이후에는 좌익과 우익으로, 전쟁을 겪으면서는 피를 나눈 형제끼리 서로 총을 겨누며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애초부터 사상이나 이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보니 좌익이었고 어쩌다 보니 우익이었다. 할아버지인 1세대가 일제에 의한 망국의 설움을 통절하게 느끼는 반면 그 2세대에서는 일제 식민교육이 만든 민족의식 마취제에 의하여 친일파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모습이 달라지지만, 일제의 혹독한 수탈과 민족말살 정책이 가중되자,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되찾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좌우파로 나뉘어져 대립과 협조를 반복하다가 8.15 해방을 맞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좌우의 대결은 더욱 심화되고 전쟁은 끝났지만 남북의 분단은 계속되고 있다.
: 주인공 지봉임의 일생은 파란만장과 불행의 연속이다. 민며느리, 일녀를 사랑한 남편의 냉대, 독립운동에 헌신한 남편, 첩실과 동거한 남편, 죽음에 임박해서야 곁으로 돌아온 남편. 작가는 그 불행한 모든 순간순간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불행과 분노를 도리어 행복으로 바꿔버리는 슬기를 가진 인간상으로 형상화했다. 그녀의 행복론은 온갖 고통 속에서도 상대를 원망하기는커녕 이해하고 정성을 다해 그 상대의 소망이 잘 이뤄주기를 빌어준다는 희생적인 자세였다. 이 장면은 박경리의 『토지』에서 월선의 죽음 앞에서 용이와 나눈 대화를 연상케 해준다. : 첫 소설이라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것이 구성과 디테일인데, 둘 다 넓고 깊은 대하장강처럼 유장하게 흘러간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강물에서 펄펄 살아 뛰어, 작가는 속절없이 무너져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걸 좋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대목들이 종종 나온다. 좋은 작품이다. 이 소설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 단정하고 정직하고 맑고 깨끗한 문장으로 수놓았다.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의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펄펄 뛰는 인생. 착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너무 산뜻하고 너무 뜨거운 마음들을 보라. 아무도 예기치 않던 경로에서 우뚝 솟아올라 독자들의 심금을 사로잡았던 낭중지추囊中之錐 소설의 목록에 오르기를!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SUNDAY 2020년 7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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