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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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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등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몽환적인 단편집으로 사랑받았던 에쿠니 가오리의 미스터리 단편집. 소녀들이 품은 사소하지만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어느 기묘한 여름날의 기억을 열한 개 단편으로 담아낸 신선한 작품이다.
수박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기묘한 이야기 '수박 향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하숙집 후키코 씨와의 일화를 그린 '후키코 씨', 비 오는 날 재미 삼아 달팽이를 밟아 죽이고 나서 죄책감을 느끼는 '물의 고리', 죽은 남동생의 장례를 한여름에 치르는 '남동생'은 모두 죽음과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잠시 살았던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아줌마와의 이야기 '바닷가 마을', 신칸센 안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도망을 치려는 소녀 '호랑나비', 얌전하게 지내는 주인공이 자주 가는 소각로에서 만난 아이와의 일화 '소각로', 이혼한 엄마와 친한 옆집 삼촌과의 미묘한 관계에 관한 에피소드 '재미빵', 가족여행으로 간 바닷가에서 만난 또래 아이에게 거짓말만 늘어놓는 소녀 '장미 아치'… 모든 단편은 어린 소녀가 겪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비밀과도 같은 이야기를 사소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이야기처럼 엮어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고 지극히 차가운 멘탈을 가진 것이 어린 소녀일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수박 향기 : 에쿠니의 작품은, 언제나 에쿠니의 비밀로 가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에쿠니의 비밀’을 읽고 난 후에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녀와 비밀을 친밀하게 주고받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은 어쩌면 그토록 긴밀하고 예쁘고 애처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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