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0년 동안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이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꼼꼼히 분석한 책. 지은이는 13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남긴 다양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프랑스가 본 한국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프랑스에 비쳐진 한국의 정체성은 크게 세 단계로 바뀌어간다. 그 첫 단계는 13~17세기로, 이 시기에 프랑스인들은 한국을 단지 '먼 나라'로서만 인식했다. 두 번째 단계는 18세기. 이 시기에 이르러 서서히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프랑스는 한국을 '착한 미개인'과 '동양의 현자'라는 양면적이며 피상적인 이미지로 인식한다.
세번째 단계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한국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구체화되는, 한반도가 외교적으로 개방되는 1880년도 부터다. 프랑스인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의 성격, 풍속, 종교, 교육, 예술 등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하지만, 이 시기 한국의 이미지는 기존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 채, '은둔의 나라' 혹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은 이 같은 이미지에서 자유로운가? 지은이는 과거의 이미지들이 부분적으로(그렇지만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전쟁과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한국'에 근거한다. 남한의 경우 급격한 경제성장을 거쳐 새로운 차원에서의 표상으로 자리잡지만, 북한은 '은둔의 왕국'의 이미지로 재구성됐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책은 이처럼 해석학적 접근을 통해 프랑스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를 전체 6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해 나간다. 단순히 프랑스의 한국관을 서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절대 한국에 대한 역사적 증언이 아니다(물론 원문인 불어판은 한국의 역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지만). 또한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에 대한 책도 아니다(물론 중국을 매개로 한 양국관계가 서술되기는 했지만). 이 책은 한국을 말하는 프랑스에 관한 에세이이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프랑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