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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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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의 작가 백가흠의 첫 장편소설. 이 작품은 이미 출간된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서사의 확장이나 삶의 다양한 형태들, 그리고 인간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대전제를 안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거의 몇 편의 장편으로 묶였어도 좋을, 한 편으로 묶기 아까울 수도 있을 스케일의 대서사로 꾸며졌다.
산속에 위치한 하늘수련원을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며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건, 그들이 지닌 각각의 사연과 상처들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죽음과 소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비틀거리는 인간 군상에 관한 나의 이야기이자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늘수련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김덕이 여사와 그녀의 딸 부부 이양자, 민진홍이 큰 축을 이루고 수련원 원장과 최영래, 다른 인부들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정년퇴직한 백용현 교수는 수련원에 들어 있긴 하지만 그와 조교 공민지의 이야기는 퇴직을 한 학기 앞둔 당시의 도시에서 벌어진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인물들의 시각이 바뀌고 겹쳐지는 데에서 중심을 잡으며 전개된다. 1. 낮잠 · 7 : 젊은 작가 백가흠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노년의 드라마 앞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틀거리는 노년이란 그가 예측하는 자신의 잔인한 미래인 것일까?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이름을 물어보며 이쪽 문 저쪽 문을 열고 닫는 사람은 백용현만이 아니다. 젊은 공민지도 과거의 무게 전체를 짊어지고 자신을 인식하기보다 자신이 아닌 것을 재현하려는 공허한 시도를 반복한다. 노년이건 청년이건 분해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는 결여를 채우는 것 이외의 다른 삶이 방향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백가흠은 거미줄을 사방으로 펼치는 거미처럼 늙음과 젊음을 같은 밀도로 배치한다. 다 같이 불안한 무 속에서 존재의 빛을 기다리고 있는 노년과 청년의 방황을 통해서 심리의 드라마를 도덕의 드라마로 변형한다. : ‘따뜻한 피가 도는 그로테스크’는 백가흠만의 것이다. 그의 그로테스크는 고원이 아니라 늘 ‘현실’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독한 이야기를 지독하게 쓰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쓴다. 곁에서 나란히 간다는 것. 깊고 어두운 곳에 잠겨본 손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 삶 너머가 아니라 삶이 심연이라는 것을, 심연은 어두운 곳이 아니라 텅 빈 곳임을 알아버린 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함께 이렇게 오래 머물러도 될까,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아프게 끓고 시리게 녹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삶과 죽음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 죽음으로부터 삶을, 이별로부터 사랑을 불러오는 위독하고 간절한 이야기. 가장 가파른 시간에 선 존재들. 후드득 떨어지는 열매 같기도 느닷없이 퍼붓는 장대비 같기도 그러나 어쩌면 눈부시게 쏟아지는 유성우 같기도 한 이야기. “나 좀 안아주라.” 마지막 말임을 알지 못해 머뭇거린 당신 앞에 나타난, 유일한 사랑의 순간을 붙잡는 주문 ― <나프탈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12년 9월 22일자 - 중앙일보 2012년 9월 22일자 '책과 지식' - 조선일보 북스 2012년 9월 29일자 - 한겨레 신문 2010년 9월 23일자 - 동아일보 2012년 9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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