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간이었다. 바람도 쐴 겸 뒤뜰을 거닐던 나는 떡갈나무 한 그루에 걸터앉아 있는 너구리를 발견했다. 너구리는 눈가에 검은 가면을 쓰고 그날 밤 우리 집을 털기라도 할 기세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너구리의 초록색 눈망울은 어둠 속에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다. 우린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구리는 그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우리 뒤뜰로 찾아와서 나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늘 그 너구리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결코 멍하니 너구리를 쳐다보지 않았듯이.
아직까지 현대 과학은 우리에게 동물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들이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동물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아직은 답을 알지 못하는 그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 내며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만든다. 왜? 어떻게?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떡갈나무에서 바라본 세상은 늘 신비롭기만 하다. -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