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고향인 서울 아현동 언저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짱아'가 식모인 '봉순이 언니'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삶에 눈떠가는 과정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촘촘하게 복원해낸 소설이다.
60∼70년대 고도 성장의 뒷골목에서 한없이 짓이겨지고 추락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을 버리지 않는 '봉순이 언니'의 삶을 반성 어린 눈길로 감싸안으며 그 속에서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씨앗을 건져올리는 작가의 붓끝은 이 소설에서도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공지영 (지은이)의 말
<봉순이 언니>를 낼 무렵 사회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그 갈피, 분명 오래도록 존재했으나 계급으로자리매기지 못한 과도기적 계급 식모, 그걸 그려내다니, 이건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어, 라는 그 말... 나는 처음으로 내가 소설가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문학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문학은 혹시 그저 고급스러운 오락이 아닐까 괴로웠는데, 평생 처음으로 그랬다.
나는 <봉순이 언니>가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아니라, 1960년대의 내 가족, 내 동네, 우리 서울과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불러낸 노래들이었고, 나는 다만 운이 좋아 그것을 기록할 영광을 얻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