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이라곤 없는 이탈리아 산골 마을 몬테레조. 인구는 남자 14명, 여자 18명으로 32명뿐이다. 그중 4명이 90대 노인이며 취학 아동도 6명 있지만 마을에 유치원이나 초중학교는 없다. 수세기 동안 이곳의 생계를 책임진 이들은 헌책을 파는 도붓장수였다. 출판사나 제지 공장, 서점도 없는 깊은 산골 주민들은 어떤 사연으로 책을 팔게 된 것일까?
베네치아의 고서점에서 몬테레조의 존재를 알게 된 저자는 “몬테레조 사람들이여, 대체 무엇이 당신들로 하여금 책을 지게 만든 건가요”라는 의문을 품고 이 마을로 들어간다. 직접 발품을 팔아 전국에 책을 전했던 유랑책방이었기에 도붓장수들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새로운 길들이 거듭 나타났다. 중세 활판인쇄부터 단테, 나폴레옹, 이탈리아 독립 운동,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길에서 이탈리아 문화라는 거대한 숲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마다의 짙고 연한 녹색으로” 펄럭이며 하나의 숲을 이루는 나무들처럼, 오랜 세월 이탈리아 문화와 정신을 채워온 유랑책방의 이야기가 대담하게 뻗어나간다. 이 책으로 저자 우치다 요코는 2019년 11월, 이탈리아일본재단Fondazione Italia Giappone으로부터 최우수 저널리즘상인 움베르토 아녤리상Premio Umberto Agnelli을 수상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9년 11월 15일자
최근작 : … 총 33종 (모두보기) 소개 :일본 도쿄에서 일한 통역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일본 국제교류센터에서 근무하며 통번역사로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오후도 서점 이야기》 《별을 잇는 손》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일》 《예술가가 사랑한 집》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 《묘생만화: 길고양이를 부탁해》 《도쿄 생각》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것》 《셰어하우스》 등이 있다.
“읽고 쓰는 것도 몰랐던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책을 팔러 다녔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작은 산골 마을 몬테레조,
그곳에 헌책을 짊어지고 전국을 유랑한 도붓장수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책은 어둠 속 촛불이었고 험한 파도 너머로 보이는 등대였다.
출판의 새벽이 밝아왔다. 단테가 있었다면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특산물이라곤 없는 이탈리아 산골 마을 몬테레조. 인구는 남자 14명, 여자 18명으로 32명뿐이다. 그중 4명이 90대 노인이며 취학 아동도 6명 있지만 마을에 유치원이나 초중학교는 없다. 수세기 동안 이곳의 생계를 책임진 이들은 헌책을 파는 도붓장수였다. 출판사나 제지 공장, 서점도 없는 깊은 산골 주민들은 어떤 사연으로 책을 팔게 된 것일까? 베네치아의 고서점에서 몬테레조의 존재를 알게 된 저자는 “몬테레조 사람들이여, 대체 무엇이 당신들로 하여금 책을 지게 만든 건가요”라는 의문을 품고 이 마을로 들어간다. 직접 발품을 팔아 전국에 책을 전했던 유랑책방이었기에 도붓장수들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새로운 길들이 거듭 나타났다. 중세 활판인쇄부터 단테, 나폴레옹, 이탈리아 독립 운동,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길에서 이탈리아 문화라는 거대한 숲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마다의 짙고 연한 녹색으로” 펄럭이며 하나의 숲을 이루는 나무들처럼, 오랜 세월 이탈리아 문화와 정신을 채워온 유랑책방의 이야기가 대담하게 뻗어나간다. 이 책으로 저자 우치다 요코는 2019년 11월, 이탈리아일본재단Fondazione Italia Giappone으로부터 최우수 저널리즘상인 움베르토 아녤리상Premio Umberto Agnelli을 수상했다.
가난이 책을 불렀다
몬테레조는 밀라노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평야를 한참 달려, 한 번 더 열차를 갈아탄 후에도 자가용으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도착하는 산간벽지다. 중세엔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요새 역할을 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여름엔 주변의 농장에 품을 팔아 돈을 벌고, 겨울엔 마을로 돌아와 자급자족하며 지냈다. 그러나 1816년, 이상기온으로 농작물이 전멸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여름이 없었던 해’로 불리는 그해에는 유럽과 북미 각지에서 5~6월에 서리와 눈이 내리고, 섭씨 30도였던 기온이 몇 시간 만에 영하로 떨어졌다. 몬테레조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갈 농지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배고픔과 고달픔에 익숙했던 마을 사람들은 주저앉지 않고 장사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몬테레조의 특산물인 밤, 밤 가루 그리고 성인의 축성이 들어간 성화와 생활달력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이것이 도붓장사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책까지 팔게 된다. 당시의 출판사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인쇄도 겸했는데, 재고를 떠안고 있을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몬테레조 사람들이 출판사의 재고나 파본을 모아 대신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길을 떠났기에 도붓장수 아이들은 ‘책 광주리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저는 열한 살이었어요. 어머니를 따라 멀리 낯선 마을까지 책을 팔러 갔습니다. 부모님은 밀라노에서 노점을 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열 살이 되던 여름에 아버지가 광주리를 주셨어요. 얇고 값싼 책들이 가득 들어 있었죠. 광주리를 메고 해변으로 가서 해수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팔아오라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집에 가면 바로 창고에서 손수레를 꺼내 균일가의 헌책을 넣어 팔면서 돌아다녔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처치 곤란한 것을 대신 판매해주니 고마웠고, 서민들의 경우 접근이 어려웠던 책을 싼값에 사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때까지도 책은 두껍고 비쌌으며, 무엇보다 지식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꾸준히 현장과 접촉하는 도붓장수들은 온 힘을 다해 손님의 눈과 손, 취향을 쫓으면서 친절하게 응대했다. 게다가 이들이 파는 책은 저렴했다. 밤이면 손수레 아래 들어가 노숙을 했기에 숙박비도 들지 않아 책이 쌀 수밖에 없었고, 도둑맞지 않게 책을 품에 안고 잤기에 창고 비용도 들지 않았다(이건 책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해준 방법이기도 했다). 도붓장수들은 어느덧 신의 가호를 전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이 되었다. “현대의 서점이 책을 팔기만 하는 장소가 아닌 것처럼 유랑책방은 책을 파는 것만이 아니었다.”
책을 산다는 것은 독립으로 가는 첫걸음
19세기, 로마 제국 분열 이후 오랫동안 외부 세력의 침공을 받아온 이탈리아반도에 민족 독립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해 통일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민중은 혁명가 주세페 마치니, 독립주의자 마시모 다체글리오 등의 사상을 다룬 책을 찾았다. 민중의 결기를 두려워한 지배자들은 출판사와 서점 등을 검열하고 수상한 책을 몰수했지만, 그럼에도 수요는 이어졌다. 이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유랑책방 도붓장수들이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이동하는 데다, 산길에도 훤하고, 담력도 있었다. 금서를 운반하기에 적임자였다. 금서 출판사들은 그들에게 책을 맡겼고, 도붓장수들은 돌과 성화, 재고 처분하는 책에 섞어 각종 금서를 퍼뜨렸다.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가 몬테레조 유랑책방 장수들을“무엇보다 위험한 무기”로 본 이유다.
밀라노의 노포 출판사 봄피아니의 창립자는 이렇게 말했다.“몬테레조의 도붓장수들에게 책을 산다는 것은 독립으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이었다.”이탈리아 독립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독립 또한 포함된 것이었으리라. 이전까지 책은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도붓장수들은 새로운 지식을 향한 소시민들의 욕구를 들었고, 움직였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데는 비난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책 파는 일은 교양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쉬지 않고 일하다니 신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저렇게 파격적인 가격에 팔면 우리는 파리 날린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전했다. 그렇게 이탈리아 문화와 정신이 흐르는 길을 확장했고,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냈다. 몬테레조의 도붓장수들은“문화의 밀매꾼”이자, 책이라는 산소를 이탈리아 곳곳에 퍼뜨린 “모세혈관”이었다.
이탈리아 책 유통의 새바람이 되다
당시 독자들의 소설 사랑은 대단했다. 과격한 애정 소설의 경우 바티칸의 검열을 피해 귀부인들이 치마폭에 책을 숨겨 살롱에 가져가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수요에 맞춰 도붓장수들은 소설, 동화책, 고전문학, 실용서 등 여러 장르의 책을 모두 취급했다. 유행에 따라 큐레이션도 달리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선물하기 좋은 동화책을, 오페라가 상연되는 날에는 원작 소설을 가져다 극장 앞에서 팔았다. 진격은 멈출 줄 몰랐다. <현모양처>나 <가정의학> 같은 일상생활과 직결된 책도 판매하기 시작했고, 판매율은 폭발적이었다.
도붓장수들은 이로부터 출판사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면서 신용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재고 외에 신간까지 유랑책방 주인에게 위탁하고 판매된 만큼만 대금을 치르도록 했다. 이후에는 판매가를 설정하고 차익을 남기는 것까지 모두 도붓장수들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도 생겼다. 연말이면 몬테레조 마을로 출판인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듬해 장사에 대해 논의하거나 신간 기획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붓장수들 중에 출판사나 서점을 차리는 사람도 생겼다. 유랑책방 출신의 에마누엘레 마우치는 남미로 건너가 서점을 열었다가 몇 년 뒤 스페인으로 돌아와 출판사를 차린다. “전성기인 1927년에는 매주 2만7000부를 간행”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외에도 현재까지 가업을 잇고 있는 몬테레조의 후예들이 이탈리아 곳곳에 남아 있다. 몬테레조와 인연을 맺게 해준 베네치아의 고서점, 비엘라의 서점, 노바라의 서점……. 처음엔 광주리에서 시작했지만 금전적 여유가 생기자 손수레로 바뀌고, 말이 끄는 수레가 되고, 서점이 되었다.
책과 인간의 역사를 짊어지고
이탈리아에는 ‘유랑책방 상’이라는 것이 있다. 1952년부터 줄곧 이어져온 상으로 매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책 중 국내서‧외서, 분야를 불문하고 가장 잘 팔린 좋은 책을 꼽아 시상한다. 심사위원은 오로지 서점 사람들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몬테레조에서 탄생한 상이다. 책 부록에 실린 수상작품을 보면 제1회 수상자인 헤밍웨이에서부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움베르토 에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업계의 정치적 의도와는 먼, 순수하고 정직한 평가로 국내외 애독가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이 상은, 발품을 팔아 독자들의 반응과 판매의 흐름을 파악했듯, 세월을 넘어 여전히 이탈리아 출판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몬테레조 사람들에게 책은 먹고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민족의 호기심의 방향을 예견하는 망원경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잘 때도 일어날 때도 책이 있었다. 밥을 먹을 때조차 작가들의 신작이나 미회수된 책 대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들은 말한다. “책이 있어서 태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대자본이 위에서 아래로 만들어내는 흐름과는 다르다. 밑바닥 저기서 솟아오르는 대중의 목소리이고, 시대가 변해도 그 골격은 변하지 않는다. 가난했던 덕분에, 목숨을 건 용기 덕분에, 돌처럼 견고한 의지와 체력, 호기심 덕분에 이들은 오늘날에도 책 속에서 먹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