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이요,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진보적 교육자 조너선 코졸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기보다는 남을 이겨야 내가 잘 산다는 경쟁논리 속에 아이들을 가두고 기성 사고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상상력을 제한하는 교육 풍토에서 교사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단호히 묻는 책이다.
아이들을 주체적인 존재이면서도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존재로 이끌어야 한다는 코졸의 신념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무상급식과 일제고사 논란,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역사 교과서 용어 논란 등의 절박한 문제 앞에서 안일함과 혼돈에 빠진 우리 교단에게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특히,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의 저자이자 《오늘의 교육》,《녹색평론》편집위원인 이계삼은 ‘해제’에서 조너선 코졸 정도의 문제의식과 깊이를 갖춘 책을 국내에서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코졸의 문제의식이 우리 교단에서 갖는 시의성, 코졸의 외침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이유에 관해 감동적으로 쓰고 있다.
최근작 : … 총 63종 (모두보기) 소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 《폭풍의 언덕》, 《테스》, 《작가들의 정원》, 《한편이라고 말해》, 《교사로 산다는 것》, 《나의 스승 설리번》, 《헬렌 켈러 자서전》,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야만적 불평등》, 《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탐정 레이디 조지아나》, 《미스터 핍》 등이 있다.
최근작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르게 가난한 사회> ,<숨통이 트인다> … 총 21종 (모두보기) 소개 :197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밤낮없이 노동하는 부모님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고, 밀양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마쳤다.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었으나, 주로 학과실과 야학에 머물렀고, 거리의 시위대에 휩쓸려 데모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빈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거나, 막걸리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사회과학도서나 시집, 소설을 읽기도 했다.
야학과 학생회, 학생정치조직 활동 등으로 대학 4년을 다 보내고, 1994년 말에 군에 입대했다. 충남 계룡대에 있는 육본 헌병감실 상황실에서 상황병으로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육군 전체의 사건·사고를 매일 실시간으로 접수하고 ‘상황 보고서’와 예하부대에 내려 보내는 ‘사고 사례’ 만드는 일을 했다.
1997년 복학, 펑크난 학점을 때워 겨우 졸업하고, 1998년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거기서 교직 과정을 이수하며 교육잡지 『처음처럼』 편집 일을 거들었다. 교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송순재 교수님의 ‘교육사랑방’ 모임 말석에서 심부름하며 공부했고, 친구들과 교육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으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2001년 경기 김포 통진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통진고를 거쳐 고향인 경남 밀양 밀성고에 이르기까지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지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내내 활동가로 일했고,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도 활동했다.
『녹색평론』, 『한겨레』, 『교육희망』, 『우리교육』, 『오늘의 교육』 등 여러 매체에 교육과 사회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이를 묶어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 2009) 등 몇 권의 책을 냈고, 십여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2009년, 밀양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녹색평론』 독자모임, 농민회, 전교조, 어린이책시민연대 소속 회원들,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풀뿌리 협동 조직인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을 만드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1기, 2기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2월 사직했다. 농업학교를 준비하려 하였으나, 그 무렵 발생한 밀양송전탑 故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으로 결성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2월, 녹색당 20대 총선 비례후보 선거에 출마하여 2번 순번을 부여받았다.
양철북
최근작 :<별을 헤아리며> ,<소녀의 마음> ,<태양의 아이> 등 총 236종
대표분야 :육아 5위 (브랜드 지수 157,298점), 교육학 7위 (브랜드 지수 187,062점), 청소년 소설 10위 (브랜드 지수 196,005점)
추천도서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그 해,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행복했습니다.
충주 무너미, 이오덕의 서재에서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편지 여섯 뭉치를 건네받았다.
원고지, 갱지, 때로는 우편엽서에 써내려간 편지를 읽으며 꾸밈없는 그대로의 두 사람을 만났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진정으로 아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평생 함께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가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반년이 넘도록 원고를 붙들고 두 사람 사이에 우편배달부가 된 느낌으로 살았다.
편지를 나르면서 사람으로 사는 모습을 엿보았다. 친구가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조재은 대표
교육계의 진보적 지성, 조너선 코졸을 만나다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야만적 불평등》의 저작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교육에 뜻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 교육자이자 작가인 조너선 코졸의 책이 출간되었다.
조너선 코졸은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와 옥스퍼드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백인 남성으로써 얼마든지 미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지만, 흑인 거주 빈민 구역인 보스턴 록스베리에서 열악한 환경의 한 공립학교 교사로 자원하면서 이후 인종 계층간 차별이라는 미국 교육계의 질곡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교육 운동가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교실도 없어서 강당에서 칸막이도 없이 합창단, 연극반이 연습하는 한 구석에서 수업을 하는 아이들,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학업 수준이 1, 2학년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들, 학교 교사에게 매를 맞은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비틀리고, 사회에 대한 경계심과 증오심으로 마음을 꼭 닫고 일탈을 일삼는 아이들의 모습은 신참 교사 코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는 이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한편, 규칙과 명령과 복종의 임무로 도배된 게시판의 자료를 뜯어내고, 사회 교과서를 교실에서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대신 호안 미로나 파울 클레의 그림, 슈만이나 라벨 등의 음악을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에 저항한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의 시를 읽어줬고, 바로 그다음 날 ‘교과 과정 이행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해고된다. 이 첫 부임지에서의 경험을 쓴 코졸의 첫 작품 《이른 나이의 죽음Death at an Early Age》은 1967년에 출간되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20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코졸이 다시 공립학교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 후였다. 1988년, 코졸은 다시 빈민가로 돌아와 빈민가의 공립학교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한 인종분리와 빈곤 문제를 겪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곳의 소외된 아이들의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코졸은 차터 스쿨, 마그넷 스쿨, 바우처 제도, NCLB(아동 낙오 방지법) 등, 교육 수준을 높이고 질 좋은 교육 혜택을 받게 한다는 미국 교육 정책에 감춰진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 즉 이들 정책이 실제로 공립학교밖에는 갈 데가 없는 빈민층 아이들을 더욱더 소외시키며 교육의 빈부 차별을 공고하게 한다는 것을 폭로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제도의 마련을 위해 열정적으로 싸워왔다. 이 시기에 쓴 저작 《야만적 불평등Savage Inequalities》(1991)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1995) 《국가의 수치The Shame of the Nation》(2005)는 미국 공립학교의 인종분리의 실상과 빈곤 문제를 폭로한 보고서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물결이 전국을 휩쓸고 몇몇 평등 법조항을 얻어냈던 60년대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오늘날, 누구나 다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는 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코졸의 고뇌가 깊이 배어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책 《교사로 산다는 것》은 약간 다른 위치를 가진다. 역시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인 것은 같지만, 빈민가 공립학교의 현실 문제에 천착하여 밀착 취재를 바탕으로 쓴 위의 책들과는 약간 달리,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은 1981년에 쓰였고, 이 시기는 코졸이 공립학교를 떠나 있던 ‘공백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코졸은 문맹이나 홈리스, 농촌 주민의 건강 등 사회문제로 시야를 넓히고 있었고, 문맹과 노숙인 문제를 다룬 《침묵의 포로들Prisoners of Silence》(1980) 《문맹 미국Illiterate America》(1986) 《레이철과 그녀의 아이들Rachel and Her Children》(1988) 등의 책을 출간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앞서의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말 잘 듣는 시민’을 기르는 미국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한 책인 《깜깜한데 집은 멀어The Night is Dark and I am Far From Home》(1975), 별다른 자료가 없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제목으로 보아 교육의 문제를 고민한 책인 것 같은 《대안 학교Alternative Schools》(1982)가 이 시기에 출간되었으니 말이다.
코졸의 자세한 평전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비블리오그라피만으로 추측하건대, 이 책 《교사로 산다는 것》은 8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코졸의 ‘공립학교 교육운동 시기’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는 책으로 보인다. 코졸이 미국 공립학교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 확고한 사상적 기틀을 가지고 다시 빈민가 공립학교로 돌아왔다면, 그 확고한 사상적 기틀을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미국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코졸의 명저들은, 국내에 두 종이 이미 나와 있긴 하지만, 너무 미국적 상황을 다루고 있어서 우리 독자들의 흥미와 공감을 사기가 쉽지 않아 국내에 잘 소개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교사로 산다는 것》은 비록 미국 공립학교 이야기지만 우리 학교교육의 현실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이 흥미 있게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코졸의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교사로 산다는 것’
침묵하는 교단에 대하여
이 책 뒤에는 현직 교사이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저자인 이계삼의 ‘해제’가 붙어 있다.
이계삼은 해제 서두에서, 일본 홋카이도의 토마리 원전 근처 쿄와쵸 마을에 사는 피폭당한 (것임에 틀림없는)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절규를 인용하고 있다. 이 여학생은 위험성을 알려주지도 않고 막아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어른들을 향해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울부짖고 있다. 교육이란 ‘가르치지 않은 것이, 굴종과 침묵이 곧 죄악이 되어버리는’ 장(場)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 교육의 장은 어떤가. 이계삼이 한탄하고 있듯,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아이들에게 원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려는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 대신 ‘엑스레이, CT 찍는 것보다 해가 작다’는 행정 당국의 공문만 그대로 읊어질 뿐이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 학교가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의 경쟁논리로 숨 막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공간조차도 공부 잘 하는 혹은 돈 많은 집 아이에게는 훌륭한 시설을 갖춘 질 좋은 교육 공간으로, 공부 못하거나 돈 없는 학생에게는 무시받고 차별받는 어두운 공간으로 나뉘어버렸다. 지금처럼 ‘학력 수준’만을 우선시하는 교육정책 하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이 발휘되지 못할뿐더러 부모의 재산능력에 따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깊어간다. 코졸은 이런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이란 아이들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교사의 의무는 학교와 국가의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다
《교사로 산다는 것》에서 코졸은 학교교육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다. 이런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이란 아이들에게 그들이 어떤 거짓 교육을 받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알려주고, 정의(正義)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정신과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코졸은 말하고 있다. 학교는 아이들이 기성 사고 체제를 뛰어넘지 못하도록 상상력을 가두고 맹목적인 애국심을 목적으로 규율에 대한 복종만을 요구하는 곳이다. 이런 학교가 작동시키는 위선적이고 교묘한 이데올로기는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노골적인 규칙 외에도, 어법(말투)에 대한 규제, 관행 및 관습적 사고, 교과서 같은 학교교육 자료 등등으로 나타난다.
* 1인칭으로 말하기 : 교사의 의무는 이런 학교 체제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다. 한 예로, ‘1인칭으로 말하기’를 들 수 있다.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주로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 하고 말하는데, ‘나는 ~라고 생각해’ ‘나는 ~를 느껴’라는 식으로 주어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나’를 주어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체제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이다. 이런 교사는 아이들에게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본보기가 되어줄 수 없다. ‘나는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아이히만 같은 어른을 낳지 않으려면, 명분 없는 전쟁에 투입되어 남의 나라 땅에서 아무 생각 없이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주입되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저항하려면, ‘나’ 그리고 ‘우리’라는 1인칭 주어를 늘 의식해야 한다.
* 극단적 견해 : 마찬가지로, 우리의 학교교육은 극단적인 말, 과격한 말은 남을 공격하며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고 양극단이 아닌 ‘중도’를 말해야(“그것도 일면 맞고, 이것도 일면 맞아. 자, 우리 한 발씩 양보해서 제3의 입장을 찾아볼까?”) 점잖고 교양 있는 말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극단도 극단 나름이고,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대쪽의 극단적인 조치도 필요한 법이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극단적 사고와 나치의 우두머리를 암살하려는 극단적 사고가 같을 리 없다고 코졸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은 말썽 부리지 않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학교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길들여온 관행이다.
* 교육 자료 : 편견을 주입하는 교과서나 과목별 ‘교사용 지도서’ 같은 이상한 자료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교사용 지도서는 수업 시간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해야 할 말뿐만 아니라 교사가 유도하여 아이들 입에서 나올 대답까지도 정해놓은 ‘답안지’로, 코졸은 이를 교사와 아이들의 대화인 것 같지만 실은 교사 혼자 떠드는 ‘분열된 독백’이라 했고, 이계삼은 ‘실로 쪽팔리는 각본’이라 했다. 코졸은 이들 자료를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분석하면 아이들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경로로 주입되는지, 그리하여 학교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짤리지 않고’ 싸우기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가슴으로 느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에 옮기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실은 주체적인 교사가 주체적인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나는 혁명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는 골치 아픈 일에 휩싸이기 일쑤고, 종종 생존을 위협받는다.
교사들에게 용감한 싸움의 깃발을 쥐어주는 코졸이 이 책에서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은, 의외로(?) ‘짤리지 않고 싸우는’ 전략이다. 왜냐하면 이계삼이 지적했듯, 공교육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고 공교육 바깥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상했던 다른 비판적 교육학자들과 달리 코졸은 어디까지나 학교 안에서, 공교육 체제 안에서, 바로 지금 여기서,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그러려면 어디까지나 교사는 교단을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싸우더라도 절대 ‘짤리면’ 안 되는 것이다.
노련한 코졸이 가르쳐주는 전략은 체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코졸은 젊은 시절 교직에 있을 때, 교실에서는 전복적인 수업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복도에서는 늘 한 줄로 조용히 걸어가라고 가르쳤다. 학교 당국이 좋아하는 것이 조용하게 줄 맞춰 걷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느 날 교장이 코졸 반에 들어와서는 반 아이들이 질서의식이 좋다고 칭찬하고 갈 정도였다. 그래서 코졸은 이렇게 말한다. 체제가 위인으로 인정하는 인물들을 거론하라. 같은 흑인해방 운동가를 가르쳐도 말콤 X보다는 교과서가 더 좋아하는 마틴 루터 킹을 가르쳐라. 단, 마틴 루터 킹을 교과서에 나와 있듯 백인 친화적이고 인내심 많은 다소 지루한 인물로서가 아니라 구속되기도 했고 극단적 주장을 옹호하기도 했던 그의 진면목을 가르쳐라. 더불어 FBI 국장 에드거 후버가 킹 목사에게 공갈 협박을 했다는 자료를 제시하면 더 좋다. 이 체제가 반대의견을 가진 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폭로하는 것이니까.
평생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도로시 데이 같은 인물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역시 교과서가 숭배하는 헬렌 켈러를 가르쳐라. 헬렌 켈러는 교과서에서 3중장애를 극복하고 ‘보는 법’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나와 있지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했는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은, 교과서가 이상하게 왜곡시켜놓은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헬렌 켈러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투쟁했다는 것을 가르치고 교실에 붙은 헬렌 켈러 사진 아래 그가 한 말 “우리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다”를 써 붙여놔라. 교과서가 인정하는 위인이 한 말을 써 붙였다는 이유로 교사를 해고하지는 못할 테니까.
자유로운 생각의 장
중립적인 교육은 없다. 교육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얽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과서에 ‘민주주의’라고 하느냐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코졸은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입장이 없는 척하지 말라고 한다.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한다. 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안 되고 ‘민주주의’라고 표기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양측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물론 이런 교사는 다른 교사들보다 엄청 부지런해야 한다). 그것이 코졸이 말하는 ‘자유로운 생각의 장’이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존중한다고 교사가 자기 입장 표명을 삼가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므로(“네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네 마음대로 하세요”는 아니니까). 그리고 교사의 말에 반대하는 아이에게 보복 같은 것은 없을 거라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또박또박 반박하는 아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하면 된다. 코졸은 3백 년 전 존 밀턴이 한 말을 인용한다. “진실과 거짓을 맞대결시켜봐라. 진실이 패배할지 누가 알겠는가?” 다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패배할까봐 두려워 주입식 교육을 한다. 반대의견을 막고 하나의 생각만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짜 ‘애국심’이 뭔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그저 ‘맹목적 애국심’만이 가르쳐지고, 그렇게 교육받은 어른들은 남의 나라를 약탈하는 눈먼 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되면서도 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입교육에 저항하는 교사에게 코졸은 말한다. ‘나쁜’ 주입교육에 저항하는 것이 ‘좋은’ 주입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교사가 학교의 전체주의적 체제에 열렬히 저항하는 모습에서 학생들이 역-주입 그 이상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 학생은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교육의 처음 목적으로 돌아와, 교육이란 진정 학생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가슴으로 느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교사는 대립되는 자료를 자유롭게 개방하여 학생의 사고를 열면서 자신의 열렬한 신념을 말해야 한다.
“교사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그러나 학생들까지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닌) 자신의 결심에 따라 실제 행동에 참여하는 것만이 학생들을 독자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물론, 어떤 단계에서 교사와 학생이 같은 투쟁을 하게 된다면 깊은 감동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