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살아 있는 시편들로 엮은 동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구방이를 둘러싼 하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분명 시를 읽었는데 머릿속에 이야기가 남는 것이다. 시 한 편 한 편이 구방이를 둘러싼 이야기의 단면이라서 시를 읽는 것은 직소 퍼즐을 맞춰 구방이의 세계를 완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
시인 권영상은 강원도 사람이다. '구수한'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시인이라 그런지 시맛도 구수하다. 또 평소 장난기 가득한 성격답게 작품에서도 해학과 익살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적 주조를 잘 살릴 줄 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툇마루에 누워 적당히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살풋 낮잠이 들었다 깼다 할 때의 느낌, 엄마의 손부채질에 얼굴이 살짝 간지러워지는 그런 포근한 느낌.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시들에는 소리가 있다. 음소거가 된 세상에 시의 소리만 오롯이 명징하게 들린다.
최근작 :<리틀 클래식북 교과서 전래 동화 11 :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 총 22종 (모두보기) 소개 :한양여자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뒤 프뢰벨그림동화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엄마의 생일 선물은 달님》이 있고, 그린 책으로는 《구방아, 목욕 가자》, 《난 한글에 홀딱 반했어》, 《손에 잡히는 사회 교과서 종교》, 《휘릭아저씨의 줄세우기》 등이 있습니다.
등단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인 권영상
1979년 문단에 나온 시인 권영상은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12권의 동시집을 출간했고, 무려 30여 권이 넘는 동화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등단 햇수로 보자면 원로 작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 권영상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직 시인이길 더 원한다.
나는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음과 동시에 나는 그들에 얽매이는 정체성(停滯性)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생명성은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금의 나를 부인하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는 시도로 꽉 차 있는 것이 생명성이다. (권영상,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 『아동문학평론』 제79호 1996.)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도 시인은 자신이 찾은 정체성에 정체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권영상의 시는 자기 색을 유지하면서 새롭고 신선하다. 동시집을 낼 때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색깔을 선보이려고 노력해 왔다. 이번 동시집 『구방아, 목욕 가자』 역시 이전 동시와 다른 변별점을 가진다.
이야기가 살아 있는 시편들
『구방아, 목욕 가자』 동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구방이를 둘러싼 하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시를 읽었는데 머릿속에 이야기가 남는 것이다. 시 한 편 한 편이 구방이를 둘러싼 이야기의 단면이라서 시를 읽는 것은 직소 퍼즐을 맞춰 구방이의 세계를 완성하는 것과 같다.
구방이는 “아빠가 사 주신 새 자전거 타고 우유 사러” 가면서 “휙휙 페달을 밟으며 골목길을 달”리는데 골목의 모든 것들이 눈부셔서 일요일이 달콤하기만 하다.(「달콤한 나의 일요일」) 그리고 “지금 길거리에 나가면/ 금방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누가 내 손을 막 끌어당길 것만 같”고 “얼른 와! 얼른 와! 하고” 친구가 부를 것만 같다.(「지금 길거리에 나가면」)
구방이는 구수하고 명랑한 이름처럼 천진난만하고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기쁨을 찾는 아이다. “모퉁이에 떨구고 간 강아지 똥마저 고소해 보”이고(「달콤한 나의 일요일」) 4월이 오면 왠지 “좀 꿈에 젖어 부풀” 것 같고 살구꽃 피는 봄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겠다고 마음먹는 해맑은 아이다. (「4월이 오면」)
구방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것은 어쩌면 엄마 아빠의 따스한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모른다. 엄마는 온종일 집안일(밥 짓고, 찬물에 설거지 하고/ 그 손으로 연탄 들이고, 빨래를 하고/대문 안에 놓인 개밥 그릇에/때때마다 밥 주고 개똥을 치우고/고추밭을 휘돌아선 끝물 고추 따고/ 「엄마의 뭉툭한 손」)을 다 하고 나서도 구방이 머리를 감겨 주고 구방이 잠 잘 들게 그 뭉툭한 손으로 구방이 등을 석석석 긁어 준다.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옛이야기도 잘 들려준다. 살뜰한 손길에 구수한 옛이야기까지 엄마 품이 너무 포근하다. 학교 마치고 오면 꼭 안아 주면서 “아들!” 하고 불러 준다. “딱 그 말뿐인데도/내몸은 샘터에서 돌아온 바람처럼/파랗게 파랗게 부풀”어 오른다.(「아들」)
아빠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아들에게 새 자전거를 사 주고, 자전거 타는 법도 친절히 가르쳐 주고, 꼭 쓸데도 없으면서 구방이가 가끔 “아빠 천 원만!” 하며 손을 내밀면 이천 원을 선뜻 주는 그런 아빠다.
구방아, 목욕 가자/아빠는 뭐가 무섭다고/혼자 가도 될 목욕탕을/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구방아, 산에 가자./아빠는 뭐가 무섭다고/만날 가는 산을/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 넌 이거도 못하냐,/그러며 날 놀리는 아빠는/어디 갈 때면/꼭 나를 앞세우려 하지요.//구방아, 이모네 가자./이것 좀 봐요.(「구방아, 목욕 가자」 전문)
어디 갈 때마다 구방이를 부르며 같이 가자 어리광을 부리는 귀여운 아빠이면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높임말을 쓰는 아들을 대견해하는 무게감 있는 아빠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웠으니 구방이는 홀로 자전거를 타면서도 가끔 “내 뒤에 아빠가 있지” 한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단다.(「자전거 배우기」)
시인이 그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인정 많고, 한낱 미물도 업신여기지 않는 분들이다. 아무리 힘겨운 세월을 살아왔어도 “그래, 세상 모든 일의 끝은 다 행복하단다.”(「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하시는 할머니의 건강한 생각과 “논두렁 풀섶에 기대어 사는/힘없는 목숨들에게/뜨거운 불 놓는다,/피할 거면 얼른 피해라,/일러도 삼세번은 이르”(「힘없는 목숨들을 위해」)시는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구방이 가족은 모두가 다정다감하다.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 구방이네 가족이 사는 모습은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구방아, 목욕 가자』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보면 좋다. 각자 자기의 역할을 그린 부분을 보고 나와 다른 점을 찾고, 배울 만한 미덕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해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를 통해 새롭게 가족애를 다지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수함과 익살, 서정성이 살아 있는 동시
시인 권영상은 강원도 사람이다. ‘구수한’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시인이라 그런지 시맛도 구수하다. 또 평소 장난기 가득한 성격답게 작품에서도 해학과 익살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적 주조를 잘 살릴 줄 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툇마루에 누워 적당히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살풋 낮잠이 들었다 깼다 할 때의 느낌, 엄마의 손부채질에 얼굴이 살짝 간지러워지는 그런 포근한 느낌.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이러한 감성에 전염되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럿이 있을 때엔/들리지도 않던 것을/혼자 있을 때면 다 듣지.//찌르레기 쯔빗, 우는 소리도/강아지 딸꾹, 딸꾹질 소리도/풀잎 청개구리/쨀끔, 오줌싸는 소리도//사각사각,/옷자락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혼자 있을 때면 다 듣지.//지난날 동무와 싸운 일이/나 때문이라는 것도/쿵쿵쿵, 뛰는 심장소리로/나는 다 듣지.(「혼자 있을 때면」 전문)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시들에는 소리가 있다. 음소거가 된 세상에 시의 소리만 오롯이 명징하게 들린다. 그래서 이런 시를 보면 저도 모르게 숨을 훅 참고 서정적인 시정에 푹 빠져들게 된다.
골짝물이 구른다. 달달달달……./바윗돌을 요리조리 비킨다./벼랑을 으차, 뛰어내린다./좁은 목을 콸콸 빠져나간다.//(중략) 골짝을 굽이쳐 내달리는/저 시원한 노랠 좀 들어 봐./실룩거리며 달아나는 저 엉덩이를 좀 봐.//비틀거리기는 해도/쓰러지는 물이라곤 한 줄기도 없어./다 꿈이 있거든.(「물은 바퀴가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