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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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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절필 후 3년여의 공백을 깨고 중편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불태우기 시작한 박범신의 2010년 신작 장편소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내면화된 시선을 외부 세계로 돌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천민자본주의의 비정한 생리에 일상과 내면이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서늘한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가슴 저리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전 세계적인 자본의 폭력성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게 된 '나'는 더 이상 사랑을 믿고 살던 스무 살의 순수한 '나'가 아니다. 그런 '나'의 고객으로 등장한 '그'는 ㅁ시의 신시가지 개발에 가장 피해를 본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이다. 그는 ㅁ시를 이끌어가는 고위층과 부자들의 집만 털면서 신출귀몰하게 신시가지를 휘젓고 다녀 '타잔'이라 불린다. '나'가 몸을 파는 것이나 '그'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도덕과 윤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명분 속에 철저히 외면된다. 그러나 '나'가 자본주의라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싹튼다. 두 사람은 서로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인간적 순수성을 발견하면서, 결코 비즈니스일 수 없는, 참다운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회복해간다. 오래된 도시 : 박범신 작가는 『비즈니스』에서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하층민들의 장렬하고 비장한 ‘오디세이아’를 그렸다. 박범신 작가의 진실함과 용기, 예리함과 강인함, 책임감과 번민, 온유함과 양심을 향해, 그리고 인성이 사라지고 물질이 지배하는 이 시대를 향해,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애정과 존중심을 향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 ‘갈망의 삼부작’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조건과 근원적 욕망을 탐색한 박범신은 어느덧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일구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즈니스』는 독자들에게 뜻깊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0년 1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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