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로점] 서가 단면도
|
배명훈의 두번째 장편소설. 상상력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가 배명훈이 본격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지독하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 동안 <타워>와 <신의 궤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았다면 이번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마음의 공식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11년 차 킬러에게 주어지는 1년의 휴가. 이 휴가가 끝나면 그는 계속 킬러로 남을지, 영원히 사라질지 선택해야 한다. 아직 7개월이나 남은 휴가 중의 킬러에게 갑자기 찾아 든 검은 조직의 지령. 그저 연극 한 편을 보고 소감을 말해주면 된다지만, 조직은 피가 튀기지 않는 지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리고 연극 무대 위에서 킬러가 본 건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시체를 연기하는 은경이. "그녀를 보았다."는 것은 곧 그녀가 제거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휴가가 끝났다. 숙청된 권력자의 딸, 김은경. 겨울을 빚어 만든 나라 체코의 차가운 무대 위에서 죽음을 연기하는 그녀는 당장에라도 꺼뜨려 버릴 수 있는 가느다란 빛. 킬러는 그 빛을 지키기 위해, 연방의 검은 그림자로부터 그녀를 숨기기 위해 봉인했던 단검을 꺼낸다. : 장르문학이라고는 하지만 SF소설은 작가에게 거대한 관념의 조탁 능력을 요구한다. 논리와 상상력 못지않게. 순문학 못지않게. 나는 배명훈이 그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제일 반갑다. 이만한 지성의 소유자가 한글로 장르소설을 써주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 『은닉』은 ‘거짓’의 백과사전이다. 거짓의 온갖 양상이 망라된다. 대표적으로 ‘위장’, 또‘허풍’. 그 밖에 등재된 항목들 ?없는 주제에, 있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현혹시키기. 엄연히 있으면서 없는 척하기.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안하게 만드는 요령. 시늉, 연막, 연극, 성동격서, 은폐, 은신 및 변신, 미끼로 유인, 가면, 배신해놓고 시침 떼기, 이중스파이, 함정, 꼭두각시, 매복, 위증, 칼을 숨긴 주머니, 음성변조, 억지웃음, 은근히 떠보기, 거울, 가상현실, 흥정, 환각, 조각난 진실의 몇 가지 파편들, 소문, 꿈. 그리고 어쩌면 사랑. : 배명훈이 『은닉』에서 그리는 취향은 권력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열쇠다. 이미 세상은 우리의 취향을 추적해 행동과 마음까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배명훈은 한발 더 나아가 취향을 조작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것이 바로 디코이! 데이터베이스에 인공적으로 주입한 가짜 취향과 순수 취향이 뒤엉켜 진짜를 은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간의 진짜 취향에 녹아 있는 선한 의지력을 믿고 있기에 이 독특한 스토리는 감동의 드라마로 승화된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12년 06월 30일 '문학예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