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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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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삶의 세목을 특유의 정교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기록해온 소설가 조경란이 4년간의 창작과 반추 끝에 선보이는 연작소설집. 치유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지닌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생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치 상처를 잊은 듯 살아가지만 그 사이로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아픔을 자각하곤 한다.
조경란은 자주 어긋나고 맥연히 교차하는 가족의 대화를 세심하게 포착해내면서, 그저 희미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온 가족 구성원들이 마침내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감각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에 더하여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통의 면면을 신중하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일면을 담아내려는 소설적 시도를 이어나간다. 가정 사정 _007 :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조경란 작가의 호흡은 좀더 깊어지고 느려진다. 우아하고 단정한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그 끝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을 다시금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우리를 최초의 삶으로 이끌었고, 사랑과 배신을 가르쳐주었으며, 끝내 체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손수 보여준 사람들을.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알지만 또 한편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경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처럼 길고 긴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쓸쓸하고 호젓한 이야기들이 살아갈 힘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위트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모든 것. 『가정 사정』은 색색의 천 조각을 연결시킨 퀼트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이다. : 어쩌면 조경란의 글쓰기란 늘 이런 것 아니었을까. 강력한 접착제가 아니라 리무버블 스티커를 쓰는 마음과 같이 신중하고 사려 깊게 표현하고 그럼으로써 누군가에게 결국은 스며들고 마는 글쓰기. 힘들 때마다 내 옆에 단 한 명의 내 편은 반드시 있다고 믿게 하는 글쓰기. 내 안에서 분명히 무언가가 “약동”(「분명한 한 사람」, 153쪽)하고 있음을 긍정하게 하는 글쓰기. 이러한 글쓰기로 탄생한 『가정 사정』은 우리에게 사려 깊고 신중하고 다정하며 힘있는 격려를 건네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국일보 2022년 7월 22일자 '새책' - 문화일보 2022년 7월 27일자 - 세계일보 2022년 10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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