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시인선 127권.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 시인이 <새의 얼굴> 이후 6년 만에 찾아왔다. 63편의 시가 담긴,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인간다움에 대하여, 상생(相生)에 대하여, 그것을 담을 언어에 대하여 30년 넘게 천착해온 그. 눈에는 눈물방울이 살짝 맺혀 있고, 입가엔 미소가 흐르는 듯한 표정의 윤제림 시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인간사 세상사의 틈바구니를 진중히 들여다본다.
생의 윤리나 진실 혹은 비의에 복잡한 수식도, 화려한 미사여구도 사실은 불필요한지 모른다. 윤제림 시에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진술만으로 오랜 시력(詩歷)의 은근한 힘이 드러나고, 우리는 그가 부러 비워둔 침묵의 자리마다에서 가만히 멈추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시인의 말
1부 바위에 시도 썼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꽃/ 새벽 산/ 설희/ 억새—금강의 가을/ 이명(耳鳴)/ 행성입문(行星入門)/ 면민회(面民會)/ 시의 기원/ 오래된 가을날/ 겨울 강을 지날 때는 조용히/ 달은 즈믄 사람에/ 수태고지/ 일행/ 제주 풍경
2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
가난 타령—명창 김연수를 생각함/ 가위—효봉 약전/ 윤용하, 당신 생각/ 저(豬)씨 문중에 보내는 사과 서한/ 전원교향곡/ 좋은 친구들/ 오래오래 학생이신,—육주 홍기삼 선생님 고희에/ 타격왕/ 현암사—강우식 시집 『사행시초(四行詩抄)』/ 만공 약전/ 자화상/ 아름다움에 대하여/ 1972년, 발행인 이병철, 삼성문화문고⑱, 조선불교유신론/님의 침묵/ 길 떠나는 가족—이중섭 그림/ 벌꿀비누 3000번/ 박녹주를 듣는 밤/ 방산몽유록(芳山夢遊錄)/ 설산 위의 남산 코끼리에게—산악인 박영석을 보내는 노래
3부 불온한 생각도 아직은 더러 있는데
나쁜 상상/ 바다엔 불공정 거래가 많다/ 그날/ 슬픈 날의 제화공/ 그때에 저것들이/ 홍어를 먹다가/ 화물의 종류에 대하여/ 거의 격추되고, 겨우 몇 대만/ 잠만 잘 사람/ 장편(掌篇)/ 나는 악당이다/ 근황/ 푸른 꽃/ 매미는 올해도 연습만 하다 갔구나/ 설렁탕집에서/ 용산역 앞에서
4부 나만 못 본 게 아니라 아무도 못 봤다
마리아와 카타리나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봄은 길게 눕는다/ 우주의 관객/ 식인 사건 피의자에 대한 검사의 구형/ 피리는 치마 속에 들었네/ 할미꽃/ 그럴 수도 있겠다/ 신동/ 절 받으시오, 젊은이/ 한 남자와 두 여자/ 이발소 앞을 지나며/ 권학문(勸學文)/ 이산/ 화장(火葬)
해설|떳떳한 슬픔의 얼굴
송종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