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천계산홈플러스점] 서가 단면도
|
난다의 걸어본다 그 다섯번째 이야기.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이주하여 23년째 살고 있는 뮌스터를 배경으로 그네가 천천히 걷고 깊숙이 들여다본 그곳만의 사람들과 그곳만의 시간들을 독일 시인들의 시와 엮어 술술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매 챕터마다 그네가 번역한 독일 시인들의 시가 한 편씩 실리는데, 이는 그네가 알고 있고 알게 된 독일만의, 뮌스터만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꽤 요긴하게 쓰인다. 그네의 번역으로 소개되고 있는 그들의 시가 좁게는 기원전 6세기경에 시작되어 '도시'로 성장해가며 오늘날 인구 삼십만 명을 이룬 뮌스터를 테마로 삼고 있는데다 크게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주요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 없이 걸었다>는 한 권의 에세이로 지칭되고 있지만 동시에 시집이자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일이라는 나라를 다룬 독일만의 총체적인 문화백과사전이다.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를 객관적으로 설명해내는 데 있어 그 사유는 깊고 그 문장은 미려하다. 새로 산 하이힐 신은 발로 걷는 걸음처럼 조심스럽고 단정하기보다 오래 신고 적당히 닳은 운동화 신은 발로 걷는 걸음처럼 유연하면서도 자유롭다. 그럼에도 늘 하고자 하는 말의 축과 의지의 깃대를 찾을 줄 알고 흔들 줄 안다. prologue : 우리는 그녀에게 뎅크말일까, 만말일까.(*독일어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무언가를 기리는 기념물을 뜻하는 말로 뎅크말Denkmal이 있고, 어떤 부정적인 사건을 경고하는 기념물이라는 뜻을 가진 만말Mahnmal이라는 말이 있다.)
뮌스터에 가면, 한 동양 여인이 당신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길을 걷는다. 이미 여인의 마음에는 수놓듯 맨손으로 만든 뮌스터의 지도가 있다. 죽은 사람들, 폭격당한 도시, 그리고 사라진 시들이 있는 지도다. 지도에 그려진 길은 인간의 역사. 그 길은 모럴이 없는 역사다. 누가 역사의 정의를 말했던가. 우리는 그저 뎅크말과 만말을 새겨서 그 앞에서 묵념할 뿐이다. 낭패한 도시와 사라진 사랑에 대해 허수경이 존댓말로 묻는다. “움직일 수 없는 단 하나의 말은 무엇일까요.” 뮌스터가 다 무엇이야. 그이를 만나러 가고 싶을 뿐. 추천대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가리라. 진주의 방언으로 그이를 만나리라. 핀쿠스 황금맥주를 마시며 푸른 반지를 끼고, 눈에 물기 많은 여인과 신 철기시대의 마지막을 함께 보리라. 시를 읽어도 좋겠다. 우연인 듯, 대부분 요절한 시인들의 시를 낭송하리라. 빵 굽는 오븐처럼 따뜻한 밤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시간은 밤공기에 흩어지고 뮌스터의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쓸쓸히 자취방으로 사라지는 시인의 뒷모습. 시인은 마치 우리가 뮌스터를 걷는 듯, 상세하게 이 도시를 풀어놓고 있다. 도시의 골목, 기념물,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 책장을 덮었다. 뮌스터의 지도는 그이가 몰래 밤마다 마음에 새긴 조국의 지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밤마다 암호로 보낸 통신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을 친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2015년 8월 21일자 '화제의 신간' - 한겨레 신문 2015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