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게>로 2011년 14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모두 휩쓰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매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을 만한 역량을 가졌다는 찬사를 듣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이 실력파 작가의 신작인 이번 작품은 <달과 게>에 이어 십대들의 성장통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같은 중학교 동급생인 소년과 소녀는 초등학교 졸업 행사로 묻었던 타임캡슐 편지를 바꿔치기하기 위해 밤새도록 땅을 파낸다. 소녀는 집단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생을 살기 위해, 그리고 소년은 존재감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거대하고 막막한 세계를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소녀의 성장 드라마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소년 이쓰오와 소녀 아쓰코가 바라는 것은 서로 정반대다. 이쓰오는 자신의 평범한 인생이 싫고 아쓰코는 제발이지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이 두 사람의 세계는 같은 나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급생임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틀리다. 날씨로 따지면 한쪽은 폭우가 치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며, 한쪽은 햇볕이 쨍쨍하고 아무 일도 없이 권태롭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세계가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비오는 날과 햇빛 쨍쨍한 날이 만나는 것처럼 그 날은 햇빛이 있는데 비가 오는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다. 그리고 아쓰코가 마트에서 동생에게 선물할 인형을 훔치는 것을 이쓰오가 목격하면서 발견은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쓰오에게는 그 도둑질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깨뜨리는 사건이 된 것이다.
최근작 : … 총 267종 (모두보기) 소개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 전문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유키 하루오 《십계》, 《방주》, 미쓰다 신조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나가이 사야코 《고비키초의 복수》, 이마무라 마사히로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 고바야시 야스미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를 비롯한 ‘죽이기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트리플 세븐》 등 다수가 있다.
일본 문단이 주목한 제2의 하루키, 미치오 슈스케가 그리는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
『달과 게』로 2011년 14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모두 휩쓰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매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을 만한 역량을 가졌다는 찬사를 듣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이 실력파 작가의 신작인 이번 작품은 『달과 게』에 이어 십대들의 성장통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같은 중학교 동급생인 소년과 소녀는 초등학교 졸업 행사로 묻었던 타임캡슐 편지를 바꿔치기하기 위해 밤새도록 땅을 파낸다. 소녀는 집단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생을 살기 위해, 그리고 소년은 존재감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거대하고 막막한 세계를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소녀의 성장 드라마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까마귀의 엄지』『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등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미치오 슈스케는 『달과 게』를 기점으로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 소설 역시 그 대열에 선 작품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발간한 최신작(『빛(2012, 6월 발간)』) 역시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성장 소설 작가로서의 행보도 주목된다.
집단 폭력과 주변인이라는 고통… 부서질 듯 여리고 투명한 십대의 세계
『달과 게』에서 한층 깊어진 시선
소년 이쓰오와 소녀 아쓰코가 바라는 것은 서로 정반대다. 이쓰오는 자신의 평범한 인생이 싫고 아쓰코는 제발이지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이 두 사람의 세계는 같은 나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급생임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틀리다. 날씨로 따지면 한쪽은 폭우가 치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며, 한쪽은 햇볕이 쨍쨍하고 아무 일도 없이 권태롭다.
아쓰코는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무관심, 전학 온 이후로 시작된 집단 괴롭힘이라는 험난한 현실에 둘러싸인다. 그리고 어느 날 폭력은 갑작스레 사라진다. 하지만 아쓰코의 마음 속에는 더 큰 공포가 자리한다.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옛날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밤바다 속에서 빛을 비추었을 때의 공포처럼 아쓰코는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보다 더 큰 외로움과 고독에 휩싸이고 이제 자신이 선택할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느낀다.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에는 마음에 서서히 이끼가 끼면서 결국에는 아픔과 차가움, 목을 넘어가는 액체의 온도나 맛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계속 그랬다면 분명히 언제까지고 참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괴롭힘이 중단된 그 순간, 이끼가 벗겨져 아쓰코의 마음은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아쓰코는 언제 그 아이들의 손이, 발이, 말이 날아들지 모르는 캄캄한 곳에 벗겨진 마음과 함께 방치되었다.”
반면 이쓰오는 주목받지 못하고 중심을 떠도는 주변인과 같은 자신의 인생이 갑갑하다. 어제와 오늘이 구분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연속되고 있는 것도, 부모님이 운영하는 여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아왔던 이곳을 물려받게 되어 낯익은 인생을 되풀이하게 될 것도 싫다. 게다가 학교에서 소요에 말려드는 일도 없고 흔한 연애 감정도 없는 자신이 마치 학교 드라마에서 포커스 나간 주변 인물로만 느껴진다.
“팔베개를 한 이쓰오는 콧김을 길게 내뿜었다. 시시하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요즘에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요시카와 이쓰오는 몹시 지루하고 따분한 인간 아닐까, 뭐랄까. 너무나도 평범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텔레비전 학교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초점이 맞지 않는 곳에 비치는 학생처럼. 성적도 보통. 이름도 보통. 키도 보통. 얼굴도 보통. 반에서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존재 자체가 희박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세계가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비오는 날과 햇빛 쨍쨍한 날이 만나는 것처럼 그 날은 햇빛이 있는데 비가 오는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다. 그리고 아쓰코가 마트에서 동생에게 선물할 인형을 훔치는 것을 이쓰오가 목격하면서 발견은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쓰오에게는 그 도둑질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깨뜨리는 사건이 된 것이다.
집단 괴롭힘의 공포, 특히 아무도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주지 않는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소녀는 소년에게 초등학교 때 묻어둔 타임캡슐의 편지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거기에는 누가 자신을 괴롭혔는지 어떻게 당했는지를 상세히 써두었다. 이것으로 소년이 자신의 사투를 알아봐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소년은 점차 소녀의 암시를 하나씩 발견해나간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 들려는 소녀를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간다. 이대로 지켜주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그렇게 놓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는 인간의 ‘감정’을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작가답게 자아 정체성을 더듬어가는 십대들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결핍된 애정, 자존감을 작가 특유의 내밀한 시선으로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담담한 어조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십대들의 성장통, 그 다른 편으로 다른 듯 닮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로 이쓰오의 할머니 이쿠의 이야기다. 이쿠는 남편이 죽고 나서 여주인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여관을 이끌어왔다. 언제나 화통하고 괄괄한 성격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 자랐으나 엄격한 가풍이 싫어서 가출을 해 본가와 연을 끊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고향은 그 후, 댐 건설로 인해 물속에 잠겼다. 하지만 우연히 여관에 고향 사람이 묵으면서 할머니의 거짓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거짓말의 사연 속에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집단 따돌림,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목을 죄고 있는 비극적인 친구의 죽음이 자리한다. 이러한 진실은 이쓰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나 더 큰 상처를 받은 것은 할머니 이쿠였다. 손자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는 죄책감에 이쿠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풀이 죽어 지낸다. 이쓰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쓰코와 겹친다. 그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꿈에서 본 광경을 재현한다. 할머니의 고향이 잠긴 댐 호수이자 아쓰코가 몸을 던지려던 그곳에 자신들의 형상을 한 인형을 던지는 의식이다.‘물의 관’에 상처투성이인 나를 던져 잠기게 한다. 그것으로 함께 잊고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댐 호수는 망각과 죽음, 한편으로는 재생의 공간이다. 상처는 서로를 발견하고 보듬어가면서 서서히 치유된다. 용기를 내어 극복하는 것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치유의 과정이다. 가뭄으로 댐 호수에서 잠긴 마을의 모습이 드러난다. 매실나무를 보며 과거를 상기하는 것은 아픔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에게 순간 돌풍이 불어 닥친다. 그리고 여우비가 내린다. 모든 상징이 응축된, 수채화와도 같은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여우비에 감싸여 눈부신 금색으로 빛나는 공기가 정말로 아름다워서 눈을 떠야 할지 감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빛나는 공기 너머로 아쓰코와 할머니를 바라보는 동안 이쓰오는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뭔가가 빛을 흩뿌리며 날아가는 듯한 감각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것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이를 꽉 깨물었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엄마의 연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이 주술적인 의식을 통해 악의적인 소원을 빌며 상처를 터뜨렸던 『달과 게』를 생각하면, 자신의 친구는 물론 어른인 할머니의 상처까지 보듬어 내려고 행동하는 『물의 관』의 소년은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다. 상처를 터뜨리고 이제는 상처의 극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소년이 다음에는 어떤 성장을 보여줄까, 그 여정을 좇는 것도 미치오 슈스케의 성장 소설들을 읽는 큰 재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