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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새내역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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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쓴 평론가는 죽었고, 시를 쓴 시인은 사라졌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시인 김경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온한 청춘들은 이 시집을 필사하며 '돌림병'을 앓았다. 시집에 얽힌 이야기 또한 한 편의 시로 읽힐 만큼, 한편의 젊은이들이 '빨간 책'을 읽었다면, 또 한편에서는 몰래 숨어들어 이 '검은 책'을 읽었다. 바로 그 전설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출간 20년 만에 부활했다.
허연 시인의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출간되었을 때,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 어떤 유(類)도 아니며, 자기만의 공화국"을 가지고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정공법으로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해 냈다."(문학평론가 故 황병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추함, 비루함, 소멸, 허무 등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독하게 대면시키며 "불온한 검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한다. 비애로 가득 찬 이 시집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 형식으로 노래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감싸안으며 사랑을 치열하게 탐색한다. 그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충돌하면서 "어디에도 희망은 없으므로"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나쁜 소년의 불온한 검은 피는 여전히 우리의 혈관을 흐르며 심장을 뜨겁게 데운다. : 이 시집엔 비애가 가득하다. 이 시집은 슬픈 은유들로 가득하지만 그의 은유는 사람을 배반하거나 인간에게 심술을 걸기 위한 수사로 머무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시집 속에서 이 결들이 드러내고 싶은 것은 인간만이 시를 향해 피를 흘릴 수 있다는 견고한 믿음이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피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인간은 인간을 위해 피를 빼앗기도 한다. 하지만 시 역시 인간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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