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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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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수상작가 권여선이 15년 만에 펴내는 장편소설. 인간관계의 틈새를 세밀하게 포착해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는 <레가토>에서 현재의 틈새를 습격하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일상적 삶의 이면을 날카롭게 투시하는 아름답고도 잔혹한 서사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레가토>는 권여선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등단작이 장편인 점을 감안하면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로서 첫 연재작이자 본격적인 첫 장편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생한 인물 형상화와 감탄을 자아내는 단단하고 선명한 문장,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담담한 포착 등 단편들에서 보여준 그만의 매력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소설은 삼십여년 전, '카타콤'이라 불리던 반지하 써클룸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당시 써클 회장이었던 박인하는 지금은 중년의 유명 정치인이 되어 있고, 그 시절 철없던 신입생들은 현재 출판기획사 사장, 국문학과 교수, 국회의원 보좌관 등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느날 영문을 알 수 없이 실종된 동기 오정연에 대한 기억이 깊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날 오정연의 동생이라는 하연이 나타나 언니의 흔적을 수소문하면서 그들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서로 얽히고 이어지기 시작한다. 소설은 각 장마다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오가며 그들의 젊은 날과 현재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1. 프롤로그: 푸른 연회 : 권여선은 사려 깊고 솜씨 좋은 기억술의 전문가이다. 현재의 틈새를 습격하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일상적 삶의 이면을 날카롭게 투시하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현재는 과거와 불가피하게 연루되고 망각은 기억의 다른 방식이며 성장은 성숙의 자연스러운 동의어가 아니다. 『레가토』는 권여선 표 ‘기억 서사’의 확장판이자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다. 정곡을 찌르는 고감도 문장과 삶의 아이러니를 해부하는 집요한 시선은 그대로이지만, 이전과 달리 시간적 순서가 정연하게 배치되고, 사건들 사이에 조리있는 인과가 부여되며, 근원적인 상처의 유래도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된다.
‘두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라’는 뜻의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레가토』를 지배하는 정조는 단절의 감각이 아니라 연속성에 대한 희구이다. 이런 변화가 장편소설의 장르적 요청 때문인지 혹은 문학적 원숙의 징표인지, 아니면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레가토』는 그동안 권여선이 써온 소설 가운데 가장 솔직하면서도 친절하고, 여전히 고고하면서도 소통을 열망하는 작품이라는 점. : 정념과 이념의 레가토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12년 05월 12일 '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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