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은 정확히 20년 전부터 프랑스의 국보급 삽화가 상페를 꾸준히 소개해 왔다. 그의 작품을 널리 보급하여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명이 되도록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의 가치에 걸맞은 아름다운 장정의 책을 내려는 노력 또한 기울여 왔다. 열린책들은 2009년~2010년에 걸쳐 상페의 작품들을 고급스러운 양장본 화집 장정으로 펴낸 바 있는데, 2018년 올해 10년 만에 그간 절판된 책들까지 새로운 양장본 화집으로 재간행할 예정이다.
이번 알라딘 리커버판으로 소개되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자전거 못 타는 아이>는 이야기꾼으로서 상페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그의 대표작들로, 한국에서도 가장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은 올해 화집 리뉴얼 시리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특별히 이 리커버판은 리뉴얼 시리즈와 같은 크기, 같은 양장으로 출간되므로, 이어서 출간될 상페 리뉴얼 13종과 통일된 판으로 두 책을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장자크 상페는 1932년 8월 17일 보르도에서 출생했다. 이제 전 세계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의 그림은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음악가들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려 팔던 상페는 19세부터 만평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의 그림을 실어 주는 신문사들을 전전하였다.
1961년 첫 화집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를 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삽화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로 드노엘 출판사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많은 작품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빠리 마치」, 「펀치」, 「렉스프레스」 같은 주간지에 기고해 왔으며, 프랑스 작가로서는 드물게 미국에서도 열렬한 반응을 얻어 「뉴요커」와 「뉴욕 타임스」에도 기고하고 있다.
상페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푸근함을 느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을 가지는 그림을 그려낸다.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의 그림에는 숨 막힐 듯한 이 세상의 애처로운 희생자들이 맑고 진솔하며, 투명한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그런 그림들은 간결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글들과 함께 그의 화집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의 아픔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고,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자전거에 정통해 있으면서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따뷔랭'의 웃지 못 할 인생 이야기이다.
최근작 :<뉴욕의 상페> ,<미국의 상페> ,<상페의 스케치북> … 총 304종 (모두보기) 소개 :첫 번째 작품집이 나왔을 때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의 일인자로 꼽힌 전 세계적 그림 작가. 장자크 상페는 가느다란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인간 내면의 고독함을 표현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드로잉으로 일상을 유쾌하게 펼쳐 보인다.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상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소년 시절 악단 연주자를 꿈꾸면서부터다. 자신이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들을 한 장 한 장 그리며 음악뿐 아니라 그림에 대한 열정도 함께 키워 낸 것이다. 1960년 유머 작가 르네 고시니와 함께 『꼬마 니콜라』를 만들었고, 이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며 삽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991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렸으며, 같은 해에 발표한 『속 깊은 이성 친구』와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영화나 희곡을 단 한 편의 데생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여실히 드러낸 명작들이다. 1991년 상페가 30년간 그려 온 데생과 수채화가 〈파피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을 받았다. 프랑스 그래픽 미술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상페의 작품집으로는 『어설픈 경쟁』, 『파리 스케치』, 『뉴욕 스케치』,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각별한 마음』,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프랑스 스케치』 등이 있다. 지금까지 60여 권의 작품집을 발표했으며 이 책들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2022년 8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미국의 상페』는 장자크 상페 별세 1주기를 추모하며, 상페가 미국을 여행하며 그려 낸 작품과 그를 기리는 칼럼들을 함께 엮은 것이다.
최근작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프레임의 수사학> ,<아무튼, 로드무비> … 총 28종 (모두보기) 소개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프레임의 수사학』, 『아무튼, 로드무비』,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이미지학』, 『프랑스 영화의 이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 『공간의 종류들』, 『겨울 여행/어제 여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자크 오몽의 『영화 속의 얼굴』...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프레임의 수사학』, 『아무튼, 로드무비』,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이미지학』, 『프랑스 영화의 이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 『공간의 종류들』, 『겨울 여행/어제 여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자크 오몽의 『영화 속의 얼굴』, 장 자크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최근작 : … 총 16종 (모두보기) 소개 :대학과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어요. 옮긴 책으로는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를 비롯한 여러 권의 어린이 책과 《애견에 대한 잘못된 상식 100가지》 등이 있습니다.
● 얼굴 빨개지는 아이
인간적인 몽상가 장자크 상페
창문이 모두 똑같이 생긴 어떤 건물의 앞쪽 면 창가에 한 남자가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는 새의 몸을 하고 있지만 전혀 날아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광활한 공간과 자유를 꿈꾸면서도 땅에 붙박혀 있는, 우연성의 함정에 빠진 이상주의자, 그것이 상페 자신의 초상이다.
- <리베라씨옹>, 1991년 12월 26일, 앙뚜안 드 고드마르의 인터뷰 기사
상페는 1932년 8월 17일 보르도에서 출생했다. 이제 전 세계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의 그림은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음악가들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려 팔던 상페는 19세부터 만평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의 그림을 실어 주는 신문사들을 전전하였으며, 1961년 첫 화집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를 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삽화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로 드노엘 출판사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많은 작품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빠리 마치>, <펀치>, <렉스프레스> 같은 주간지에 기고해 왔으며, 프랑스 작가로서는 드물게 미국에서도 열렬한 반응을 얻어 <뉴요커>와 <뉴욕 타임스>에도 기고하고 있다.
상페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푸근함을 느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을 가지는 그림을 그려낸다.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의 그림에는 숨 막힐 듯한 이 세상의 애처로운 희생자들이 맑고 진솔하며, 투명한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그런 그림들은 간결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글들과 함께 그의 화집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얼굴이 늘 새빨개지는 마르슬랭. 어디에서고 재채기를 하는 르네. 두 아이가 펼치는 행복 찾기 여행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산뜻한 그림, 익살스런 유머, 간결한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자크 상페의 또 하나의 그림이야기. <속 깊은 이성 친구>, <라울 따뷔랭>, <뉴욕 스케치>로 이미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상페의 신작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의 아픔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상페의 따뜻한 위로가 다시 한번 마음을 녹인다. 삶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태도와 천성적인 낙관이 녹아든,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 같은 소설이다.
줄거리
꼬마 마르슬랭에게는 큰 고민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
친구들은 항상 묻는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갛니?>
대답하기 귀찮은 마르슬랭은 혼자 노는 걸 더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늘 혼자다.
어느 날 그에게는 친구가 생긴다.
언제나 재채기를 하는 꼬마 르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르네는, 연주 도중에도 수업 도중에도 어디에서고 온몸을 떨며 <에엣취> 하고 기침을 해댄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어딘가 닮은 둘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즐겁고 신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도 잠시뿐.
르네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마르슬랭은 다시 혼자가 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마르슬랭, 여전히 얼굴이 자주 빨개진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끊이지 않는 기침 소리를 듣게 되고 그 기침 소리의 주인공 르네를 다시 만난다.
이제 어른이 된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더 깊어지는데…….
누구나 하나쯤 안고 살아가야 하는 콤플렉스, 어떻게 콤플렉스를 대하느냐는 가치관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소설에는 늘상 빨개지는 얼굴과 끊임없는 재채기가 콤플렉스인 두 아이의 유년 시절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가슴속에는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 낙천성이 글의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그들이 맑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 또한 밝고 깨끗하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소중히 보듬어 안아주며 행복한 한때를 보낸 두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진정한 우정과 행복한 삶에 대해 설교하지 않고 나직막한 목소리로 가르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어처구니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따뷔랭의 웃지 못 할 인생 이야기
<좀머 씨 이야기>와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삽화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장자크 상페의 짧은 이야기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가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선의 삽화가로 잘 알려진 장자크 상페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이미 알려진 그의 그림만큼이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한 편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글보다 그림들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감성들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글만을 다루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다르다.
상페는 자전거에 정통해 있으면서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따뷔랭’의 웃지 못 할 인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이웃과 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삶을 통째로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유머
상페의 그림은 세심한 곳에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상페가 섞어 놓은 농담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리얼리티일 수도 있고, 그의 익살일 수도 있으며, 청소년 독자들의 구미에 맞춘 귀엽고 예쁜 장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절제된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해내고 있는 조연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각을 한 따뷔랭에게 선생님이 자신의 자전거 수리를 부탁하는 장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뒤로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학생이 있고, 반대편에는 노트에 잉크를 쏟아 당황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또 청년 따뷔랭이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 네 발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장면 한 구석에는, 담 너머에서 언니 오빠들을 훔쳐보며 킥킥거리고 있는 귀여운 소녀가 있다. 또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는 데 일가견이 생긴 어린 따뷔랭이 언덕길을 내려와 이웃집 담을 부수며 공중 낙하하는 장면도 그렇다. 공처럼 웅크리고 공중 제비돌기를 하고 있는 어린 따뷔랭의 태연한 표정과, 그가 내려온 길의 삐뚤삐뚤한 자전거 바퀴 자국 등은 모두 시침 뚝 떼고 있는 상페의 익살이다.
또 상페의 그런 섬세함은 작품 속에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주변의 일상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온 동네 사람들이 빌롱그의 자전거 경주 소식을 라디오로 들으며 기뻐하는 큰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표정,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여간 아기자기한 맛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바로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상페의 애정과 타고난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주는 약, 웃음
유명한 유머 작가 사비냑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상페는 자기가 우리 편이며,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임을 곁눈질로, 그리고 연필 끝으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곤 한다. 그는 애정을 가득 담아 유머라는 팔꿈치로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상페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이미 그의 색감이나, 세밀한 필체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에서도 그러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라울 따뷔랭은 한편으로는 두 개의 바퀴 위에서 균형 잡는 것을, 색맹들이 색 구별하는 것을 단념하듯이 포기해 버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따뷔랭(자전거)’을 타지 못한다는 가슴 아픈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기도 했다. 또 사진사 피구뉴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자신이 언제나 중요한 순간을 잡는 것에 실패한 사진사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주변의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상페가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는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상페는 비밀을 간직하려 애쓰는 따뷔랭의 상황을, 그리고 우연히 찍힌 사진임을 숨기고 수다스럽게 자랑을 떠들어 대는 피구뉴의 모습을 애처롭게 그려내지 않는다. 독자들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같이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상페는 독특한 방법으로 주인공들과 독자의 아픔을 다룰 줄 아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따뷔랭과 피구뉴가 나누는 맑게 개인 한바탕의 웃음은 그 모든 아픔들을 풀어내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따뜻한 감성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바로 이 마음의 교류가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져 소리 없는 웃음을 나누게 만드는 것이다.
줄거리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 세롱에서는 더 이상 ‘자전거’를 자전거라 부르지 않고, 자전거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자전거포 주인 라울 따뷔랭의 이름을 따 ‘따뷔랭’이라고 부른다. 그런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따뷔랭’의 왕인 그가 ‘따뷔랭’을 탈 줄 모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자전거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면서도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한 그는 자신의 실패 원인을 파악하고자 자전거의 구조와 부품을 철저히 연구하여 자전거 박사가 되었고 결국 자전거포를 경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늘 다친 척 붕대를 감고 다녔고, 좀더 커서는 너스레를 떨거나 기묘한 모양의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각인시켰고, 그 덕분에 그는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랑을 느낀 ‘조시안’에게 그 비밀을 고백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사랑 고백을 기다리던 ‘조시안’은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화를 내며 떠나 버린다. 이 경험 뒤에 그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마을의 한 간호사와 결혼하여 자식 둘을 낳고 사랑 받는 자전거포 주인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던 어느 날, 그가 받고 싶지 않아 했던 편지가 도착한다. 마을에 새로 이사 와 친구가 된 사진사 피구뉴가 라울 따뷔랭이 자전거를 탄 모습을 찍고 싶다고 간청을 한 것이다. 갖은 핑계를 다 대고 피하려 했지만 그의 집요함과 어느새 사진사의 편이 된 아내의 간청에 몰려, 그는 할 수 없이 사진사가 골라 둔 어느 언덕에서 절망적으로 자전거 위에 몸을 싣는다. 다음날 신문에는 절벽을 넘어 건너편 언덕을 향해 날고 있는 자전거가 찍힌 사진이 실리고, 병원에 입원한 라울 따뷔랭은 용감무쌍한 유명 인사가 된다.
퇴원한 라울 따뷔랭은 사진관에 들러 피구뉴에게 이 모든 것이 우연이며 거짓임을 고백하려 한다. 한데 오히려 사진사는 사실 그 사진은 겁에 질려 놓친 카메라가 땅에 떨어지면서 저절로 찍어 낸 사진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따뷔랭은 실의에 빠진 피구뉴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사진관을 나온다. 사진사는 머리 좀 식히겠다며 여행을 떠난다. 원치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비밀을 되돌려 받은 따뷔랭은 사진사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묘한 감정 상태에 빠진다. 몇 달 뒤 따뷔랭의 가게에 여행에서 돌아온 사진사가 불쑥 나타난다. 따뷔랭은 그에게 “내가 정말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정말 우스운 노릇이지만……” 하면서 말을 맺지 못하고 그만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사진사도 모든 것을 깨닫고 같이 웃는다. 사진사는 이제 따뷔랭의 비밀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독한 사람들의 친구 장자크 상페
나 자신을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옷차림은 늘 단정하고, 약속 시간엔 늦는 적이 없으며, 세금도 어김없이 내는 남자. 그러면서도 노상 자기는 주변인이라고 말하는 남자. 재미 있지 않은가?
--1991년 12월 26일, <리베라씨옹> 앙뚜안 드 고드마르의 인터뷰 기사
수채풍의 섬세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려 내는 삽화가. 글을 쓴다는 것이 의외로 느껴지는 너무나 인간적인 몽상가. 애정이 가득한 유머라는 손짓으로 우리의 삶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상페는 1932년 8월 17일 보르도에서 출생했다. 이제 전 세계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의 그림은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음악가들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려 팔던 상페는 19세부터 만평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의 그림을 실어 주는 신문사들을 전전하였으며, 1961년 첫 화집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를 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삽화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로 드노엘 출판사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많은 작품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파리 마치>, <펀치>, <렉스프레스> 같은 주간지에 기고해 왔으며, 몇 해 전부터는 <뉴요커>와 <뉴욕 타임스>에도 기고하고 있다.
상페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푸근함을 느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을 가지는 그림을 그려 낸다.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의 그림에는 숨 막힐 듯한 이 세상의 애처로운 희생자들이 맑고 진솔하며, 투명한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그런 그림들은 간결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글들과 함께 그의 화집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상페의 주요 작품집으로는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1962), <모든 것이 복잡해진다>(1963), <랑베르 씨>(1965), <마주보고>(1972), <랑베르 씨의 신분 상승>(1975), <가벼운 일탈>(1977), <아침 일찍>(1983), <어설픈 경쟁>(1985), <사치와 평온과 쾌락>(1987), <뉴욕 스케치>(1989), <여름 휴가>(1990), <속 깊은 이성 친구>(1991),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1993),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1995), <거창한 꿈>(199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