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세번째 장편소설. 윤고은 작가는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을 출간했다. 작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사회문제를 환기시키는 힘에 더해 위트 있는 문장력과 재치 있는 서사를 꾸준히 선보이며 문단과 독자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해적판을 타고>는 한 가족의 마당에 유해 폐기물이 묻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결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 점점 마당 밖의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가는 가족의 이야기에 주목함과 동시에, "이게 저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거 아니에요?"라며 의문을 던진다.
더불어 어른들의 삶과 대비되는 '중2' 채유나와 뒤뒤의 이야기가 작품의 다른 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재난에 가까운 상황에 묘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내 발아래 묻힌 유해 폐기물,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유나와 그의 가족은 폐기물의 악몽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윤고은 (지은이)의 말
소설의 탄생은 별의 탄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안에서 부유하던 먼지들이 서로 만나고 뭉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언제나, 먼지다.
유해 폐기물을 내 집 마당에 묻은 건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선점한 장면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다룬 뉴스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묻은 어느 집 마당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표정도. 그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채로, 길을 걷다 우연히 ‘마당을 빌려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게 됐다. 그 현수막은 폐기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는데, 그 순간 내 안의 먼지들이 합쳐졌고 첫 문장과 둘째 문장과 셋째 문장과,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이 소설을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상한 폐기물을 발아래 두고 자라는 십대.’ 그러나 그게 과연 유나네, 십대, 잔꽃마을만의 이야기일까? 생각해보면 내 집 아래에 뭐가 있는지, 내 산책로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이 되기까지 애써주신 문학과지성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 소설을 일주일에 두 번씩 연재할 때, 3+1+3으로 한 계절을 함께 통과했던 독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참고로 3+1+3이란 사흘 쓰고 하루 쉬고 또 사흘 쓰는 방식을 말한다. 그 결과 일주일은 7일이라기보다는 3+1+3의 합이 되어버렸다. 3+1+3은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조합이다.
이제 책으로 마주하게 될 독자들께도 반가운 마음을 전한다. 언젠가 카페에서 내 책을 읽는 사람을 보고는 너무 설렌 나머지 그 카페를 뛰쳐나간 기억이 있다. 폭발적인 즐거움으로 팽창했다고나 할까? 『해적판을 타고』와도 그런 식의 만남을 꿈꿔본다.
어떤 글은 쓰고 나면, 창작물이라기보다 되찾은 유실물 느낌을 준다. 이 여섯번째 책도 그렇다. 그게 어느 부위에 필요한 것인지는 몰라도, 오래 찾았던.
2017년의 한 번뿐인 어느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