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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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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뭉스러운 얼굴로 도시의 슬픔을 웃어내는 작가 손홍규의 세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서는 지난 11년간의 탄탄한 공력을 담아 좀더 깊어진 고민과 예리한 시선으로 비틀린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면면을 들추어낸다. 낯설고 팍팍한 도시 서울, 그곳에서 가난한 외부자로서의 슬픔과 외로움을 손홍규 특유의 의뭉스런 유쾌함으로 풀어간다.
아무런 과오도 범하지 않은 자신에게 가난이라는 힘겹고 위태로운 몫을 배당해준 폭력적 세계에 대한 증오를 잊지 않는 것. 손홍규 소설의 문학적 원천은 바로 이것에 있다. 동시에 이러한 팍팍한 세상을 함께 살아내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위무하는 손홍규의 특장 또한 돋보인다.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 근대와 반근대 사이의 경계인들이 모여 먹고 놀고 사랑하며 복닥거리는 이야기로 가득 찬 이 소설집은 따뜻한 빛을 내고 있다. 유난스럽지도 모나지도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이 이 세계에 발맞출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가난이다. 대부분 도시 빈민인 이들은 구질구질하고 비좁은, 인간의 거주지라기보다는 거의 짐승의 서식지에 가까운 골방들을 전전하면서 '비자발적 유목의 삶'을 살아간다.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청년들은 지나치게 가혹할 만큼 환경적으로 열악하거나, 어긋나고 불편한 관계를 견뎌야 하는 공간들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방이 없는 생활, 내일이 없는 삶 속에서도 비애와 향수에 젖는 길 대신, 뼛속까지 녹아든 타자적 감수성으로 서울을 응시하고 문학에 골몰한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근대의 상처를 피해 전근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 세계의 균열을 내고 근대에 반하는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손홍규의 이러한 자세를 "서울에서 노령을 찾는 길"이라 평하며 "불멸의 형식 찾기 서사"라고 이름 붙인다. 투명인간 : 그는 자신과 연인을 ‘매기’에 비유한다. 매기는 수퇘지와 암소가 흘레붙어 낳는 변종 괴물이다. 그러니까 그는 여전히 노령의 사내다. 스스로를 정상적 상징 질서의 내부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인이자 괴물, 끔찍한 타자성의 표식을 가진 외부적 존재로 인식하는 노령의 사내다. 그는 애초부터, 그러니까 노령에서 보낸 유소년기부터 이미 자신이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구타유발자란 사실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매기의 존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읽힌다. 그들은 모두 비루하고 졸렬하고 가난하고 엉뚱한 경계인들인데, 그 매기들은 결국 근친혼 속에서 살다 종래에는 소멸할 운명들을 타고났다. 노령의 사내는 서울에서 뼛속까지 타자였던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2년 06월 17일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2년 06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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