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2005년 작 소설.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와 있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존 버거는 자신과 동일한 이름, 나이, 배경을 지닌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픽션과 에세이의 구분이라는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주인공 존은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이고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존이 발 딛는 곳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옛 스승, 친구와 애인, 그리고 이름 모를 선사시대 예술가까지, 그들은 과거에 존과 함께 경험했던 일들을 추억하고, 존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듯한 충고를 던지기도 한다.
존 버거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적 주제ㅡ인간의 소명과 양심, 용기와 딜레마, 문명과 도시화에 의한 인간소외 등ㅡ를 결코 과장되지 않은, 극도로 명료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특히 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노작가가 이 소설에서 선택한 '죽은 이'들의 목소리는,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추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통해 인간이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하나씩 깨달아 가자고 역설한다. 우리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그리 멀지 않으며, 아주 가까이 , 바로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 있다는 암시가 소설 전반에 흐른다.
1. 리스본
2. 제네바
3. 크라쿠프
4.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
5. 아일링턴
6. 퐁다르크 다리
7. 마드리드
8. 슘과 칭
8 1/2.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일했으며 현재 글 쓰고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신도 버린 사람들』, 『마음을 치료하는 법』, 『웨인 티보 달콤함 풍경』등이 있고, 에세이 『한 줄도 좋다, 가족영화: 품에 안으면 따뜻하고 눈물겨운』등을 썼다.
존 버거 (지은이)의 말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ㅡ아니 어쩌면 더ㅡ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렇지 않은가요? (겉으로야 아닌 척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하지만 살찐 희망은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이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해 나갑시다. 이제 독자 여러분께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