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씨네마인드
박지선.황별이.최윤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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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씨네마인드>가 책으로 나오다니!
평소 티비를 즐겨보지 않는 내가 웨이브로라도 보려고 애썼던 프로그램인데 책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프로를 다 챙겨 보진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달랠 길이 생기다니!

잔인한 장면을 좋아하지 않아서 스릴러 영화는 유명하다 한들 안 본 것이 더 많은데, <지선씨네마인드>에는 꼭 범죄 영화뿐만이 아니라 <밀양>이나 <버닝>,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장르가 다른 영화들도 분석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대해 잠깐이나마 집중해 보려 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대학생 때 누가 꼭 보라고 추천해 줘서 보게 됐었는데, 사실 그때는 이해를 못 했었다.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쟤네 다 이상해. 저런 게 사랑인가?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어떤 점이 뛰어나다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한 번 더 봤을 땐 이래서 좋은 영화였구나 싶었고, 이번에 <지선씨네마인드>와 함께하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았을 때 한 번 더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초입에 나오는 말처럼 마냥 로맨스에 주목하기보다는 상처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며 고통을 치유해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샤우팅 속에 숨겨진 따뜻함이란!

p.138
영화 속에서 팻이 자주 쓰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excelsior'예요. '더욱더 높이'라는 의미죠.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그 시작은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p.139
영화에서는 팻이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줬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어요. '자기 자비'라는 건데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친절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런 태도를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에요. 스스로의 고통에 마음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이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즉, 자신에게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려는 노력. 이게 바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그러니까 더 나아지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내 마음을 먼저 잘 들여다보고 보살펴 주세요. 지금 이미 여러분의 마음 뒤편에 이미 '실버라이닝'이 반짝이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친절하려 노력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사소한 실수에도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다. 나도 종종 저지르는 짓이다.
하지만 위에 나온 '자기 자비'처럼 그런 관대함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나의 모습을 직시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었는데 최근 일상에 치여 잊어가다가 <지선씨네마인드>로 다시금 떠올려 마음에 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외에도 <밀양>편에서는 '피해자 다움'에 대해 집어주신 점이 좋았다. 티비나 온라인상에서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등장하였을 때, 그 사람이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피해자상에 맞지 않을 경우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듯 피해자들에게 품는 기대나 고정관념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사회적으로 의논해 볼 문제인 듯싶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렴풋하게나마 들어본 심리학 용어가 간간이 설명되어 있는 점이 좋았다.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정확한 뜻을 몰라서 긴가민가 하는 용어들이 있었는데, 알기 쉽게 용어의 정의가 정리되어 있어서 꽤 유용했다.

<지선씨네마인드>를 읽으며, 이미 본 적 있는 영화들은 당시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었고 아직 보지 못했던 영화들은 앞으로 영화를 볼 때 어떤 포인트에 주목해 보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보기 꺼려졌던 영화도 마냥 유희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란 점을 알게 되어서 시간 날 때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추가해두게 되었다.

한 편 한 편 길지 않은 분량에 알짜배기 내용들만 정리되어 있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부담 없이 추천해 줄 수 있을 <지선씨네마인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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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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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서평단에 당첨되어 미리 읽어보게 된 소설.

제목부터 <크리스마스 타일>인 만큼 각기 다른 인물들이 이리저리 연결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작소설이다. 총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데이, 이브닝, 나이트>와 <첫눈에는>이 유달리 더 기억에 남았다.

특히 <데이, 이브닝, 나이트>의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쯤, 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이소라 씨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였다. 어쩜 타이밍이란! 덕분에 가망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 일말의 빛을 지켜주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요즘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코로나 시대가 당연하단 듯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 삼! 스! 레! 깨닫게 되었다. 이는 너무나도 익숙해 뭘 이런 걸 깨닫기씩이나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굉장한 충격이었다. 나는 어쩌면 지금껏 코로나 이전의 시대를 정상으로 놓고, 코로나 시대는 비정상적이며 일시적이므로 다시 그 이전의 시대가 완벽히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경 속의 팬데믹을 인식한 순간, 아아 이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지 오래구나, 지금 이 모습 자체가 현실 그대로구나란 것을 절감하고야 말았다. 진부하지만 신선한 발견이었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가장 뒤편에 수록된 '작가의 말'이 너무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꾹꾹 눌러 담고 싶은 말들의 연속이었다. 지나치지 말고 꼭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두 부분을 아래에 소개한다.

창비 '스위치'에 연재를 시작해 한편 한편 보탤 때마다 마음속 가장 깊은 그늘과 가장 환한 빛을 동시에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한 해를 정신없이 보내다 연말이 되면, 곧 소멸될 일 년이라는 시간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 뚜렷해지듯 말이다. 인물들 저마다 각자의 어려움과 피로, 슬픔과 고독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긴긴밤을 지나 걸어오면 12월이라는 기착지에 멈춰 서게 되고, 그것을 축복하듯 내리는 하늘 높은 곳의 흰 눈을 만나면 비로소 아득해지기도 한다고. 그렇게 우리가 아득하게 삶을 관조해낼 때 소란스러운 소동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을 만지게 되는 것일지 모르다고.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p.305, 작가의 말 中)

… 그렇게 해서 맞이할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 풍경들이 그 각자의 이유로 가치 있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p.306, 작가의 말 中)

책을 덮고 나니 지나간 인연들이 떠오른다. 꼭 연인의 관계로 만났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친구의 형태로 묶였던 사람들도, 그리고 지인이라는 단어로밖엔 표현할 수 없었던 사람들까지도. 다들 잘 지내시죠? 저는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자고 자주 웃고 자주 울며 잘 지낸답니다. 보지 못할 안부 인사를 이곳에서나마 띄워봅니다. 부디 건강하고 편안하시길!

철저하게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아기자기한 부드러움을 내보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 덕분에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쁘게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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