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을 많이 쓴 건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노안과 난시에 시달리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눈에 힘을 주어야 겨우 보라색 바탕의 흰색 글씨인 장문의 글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류애와 생명과 민주주의와 소수자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이 책이 그런 생각을 편집에까지 적절히 반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뉴스로만 접한 에타에 절망하다가 이 책을 통해 이런 고민을 하는 이십대도 아직 남아 있다는 데에 희망을 느낀다. 마지막 나오는 글에서 저자가 지난 민주주의 정부가 했던 무수한 노력을 잘 모르면서 all or nothing으로 무참하게 폄하하는 건 매우 불편했는데 그런 태도가 민중의 냉소를 끌어내고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좀 성찰했으면 한다.
우리나라 사회 정치 상황을 이탈리아의 그것에 대충 끼워 맞추었다. 제목을 보고는 이탈리아 정치 상황을 주로 논증하고 우리 나라 정치 상황을 풀어 쓰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내용은 정반대 순서였다. 이탈리아가 비슷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그 논리에 맞춘 논거만 끌어와서 그런건지 여부는 논거가 충분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로 뚜벅뚜벅 우리가 걸어가는 게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인지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치인이 득세하는 것이 그 나라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도 계속 그 길로 가면 이렇게 될 거라는 등의 논술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없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호텔 화장실 들어갔는데 휴지도 없고 비데도 아니고 물도 안 내려가서 황당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