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바이브 -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
김은지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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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강아지와 산책할 때 코스를 정하지 않고 강아지가 가는 대로 따라가는데 작가의 산책도 나와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모르던 가게도 알게 되고 다음에 저기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극내향형 인간인 나에게 주변을 확장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익숙한 장소만 가다가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일이 가끔은 즐겁다. 그래서 작가가 산문집에서 공유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_P.24
놀라운 사실이 너무나 많지만 그중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130여 개의 다른 이름, 즉 이명을 쓰며 수많은 정체성이 담긴 작품을 남긴 이력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페소아는 이명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알베르투 카에이루‘라는 이름으로 가장 목가적 시를 쓰는 체험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요즘 방송인들이 많이 하는 ”부캐“ 세계관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생소한 이름을 붙이고 평소의 자신에게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는 일. 나답다는 관념을 넘어서 더 나다워지는 순간.
_P.45
도탑다?
두텁다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도톰하다처럼 간지러운 이 단어는 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는 뜻이었다. 도타울 수 있는 것들로는 신의, 우애, 정 같은 게 있겠다. 가능하다면 의사소통 능력도 도타워지면 좋겠다. 문장력도, 선물 고르는 센스도, 방 정리 솜씨 같은 것도 도타워지면 좋겠다. 도탑다, 도탑다, 하고 단어를 굴리자 마음이 장갑을 낀 것처럼 따스해졌다.
_P.55
헤어지는 고통의 크기를 생각하면 웬만하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나아 보인다. 악의 없이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괴롭게 하고,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아픈 말을 하고, 화해하려고 찾아갔더니 다른 사람과 키스하고 있다니. 사랑의 기억을 삭제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만하다. ’다들 무슨 배짱으로 사랑 같은 것에 빠지는 거야.......‘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참 용감한 것 같다.
_P.132
한편으로 ’좋아하고 있지 않은 상태‘의 평온함을 좋아한다. 설거지를 말끔하게 끝내고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감기를 조심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바란다.
_P.163
다시 올 수밖에 없겠네. 다산생태공원도, 땡큐버스도 남겨두고 집으로 왔다. 자전거도 타고 막국수도 먹어야지. 다음을 위해 좋은 것들을 남겨둔 것 같아 든든했다.
_P.189
덜 좋아하면 좋을 텐데, 어떻게 덜 좋아하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좋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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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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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에 언급되던 소설이라 고래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완독해서 약간 뿌듯한 상태다. 에이해브의 모비 딕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처럼 작가 허먼 멜빌도 이 책을 그렇게 집필했을 거 같다. 고래에 대한 사전에 가까운 지식과 신화적인 이야기, 포경의 과정과 기름을 얻는 방법까지 너무나 세세한 설명에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소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나는 리더쉽에 더 끌렸다. 리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이러다 다 죽어!)

_P.251
“(...)내게는 그 흰 고래가 바로 내 코앞까지 닥쳐온 벽이다. 때로는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놈은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괴롭히고 있다. 나는 놈에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우는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 내가 증오하는 건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역이든, 나는 그 증오를 녀석에게 터뜨릴 것이다. 천벌이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다. 태양이 나를 모욕할 수 있다면 나도 태양을 모욕할 수 있을 테니까.(...)“
_P.282
여기,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반백의 노인, 증오심에 가득 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노인이 있었고, 그의 선원들은 주로 더러운 배신자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그리고 식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스타벅은 미덕과 상식을 가졌으나 동조자가 없어서 별 영향력이 없었고, 스터브는 태평한 성품이어서 매사에 무관심했으며, 플래스크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위인이어서, 이들 중에는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런 항해사들의 지휘를 받는 선원들은 처음부터 에이해브의 편집광적 복수를 돕게 하려는 목적에서 어떤 악마적 운명에 의해 특별히 차출된 일당인 것 같았다.
_P.449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은행이 파산하면 당신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당신의 약제사가 실수로 당신 알약에 독약을 넣으면 당신은 죽는다. 물론 극도로 조심하면 인생에서 이런 숱한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퀴퀘그와 연결된 원숭이 밧줄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지만, 때로는 퀴퀘그가 밧줄을 홱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_P.519
내가 아무리 고래를 분석해 보아도 피상적인 것밖에는 알 수 없다.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고래의 꼬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고래는 얼굴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고래의 얼굴을 알겠는가? 고래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는 내 등짝인 꼬리는 보았겠지만 내 얼굴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나는 고래의 뒷부분인 꼬리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그가 제 얼굴에 대해 어떤 암시를 주더라도 나는 다시 말할 수밖에 없다. 고래에겐 얼굴이 없다고.
_P.638
”선장님은 저를 모욕한 게 아니라 화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저를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장님은 웃을지 모르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세요.“
_P.744
”선장님, 절대로, 절대로 그놈을 잡지 못할 겁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그만둡시다. 이건 악마의 광기보다 더 나쁩니다. 이틀 동안 추적했고, 보트가 두 번 박살났고, 선장님의 다리도 또다시 부러졌잖습니까. 선장님의 사악한 그림자는 사라졌습니다. 착한 천사들이 몰려들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합니까? 그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몽땅 물속에 처박을 때까지 그놈을 계속 추적할 겁니까? 그놈한테 바다 밑바닥까지 끌려갈 겁니까? 지옥에까지 끌려갈 겁니까? 오, 더 이상 그놈을 추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불경스러운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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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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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삶과 죽음만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장기 구독 시스템은 그것마저 돈이 유무에 따라 누릴 수 있다. 유온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그들의 유산을 받는다. 그러나 누진세가 적용된 심장 임플란트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피부 이식으로 늙어 보이지 않고 장기 이식으로 삶을 연장해도 돈이 많은 소수를 제외하고 결국 구독 기간 만료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노화와 죽음이 선택이 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 년을 넘게 살아도 죽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이려나.

_P.11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_P.29
우리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_P.52
임플란트 장기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제각각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가장 성공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이거였다. "고장 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치료다." 거짓말은 아닌 것이 이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심장 정지와 폐 정지다. 다른 말로 하면, 모자란 통장 잔고다.
_P.229
심장 임플란트 구독 기간 종료까지 1개월. 연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예'를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이번에는 다음 문구가 표시되었다.

심장 임플란트 1년 플랜(최고 인기): 105억 원(17% 할인)
심장 임플란트 1개월 플랜: 10억 5000만 원

어릴 때였으면 100년 넘게 살았으면 삶에 별 미련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살아도 살아도 아쉬움 뿐이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쉬운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아쉬웠고, 억울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삶의 놀이공원에서 영원토록 놀고 있을 텐데 말이다.
_P.251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불태웠던 걸까. 막상 죽음에 바짝 다가서니 그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게 많은 시체를 봤는데도 나는 아직도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보아 온 시체의 숫자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생 아마추어다. 우리가 여전히 4,000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에 감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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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츄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암실문고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윤석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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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P.110
열 살 무렵, 발튀스는 니옹 성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그는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제네바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 고양이는 미츄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발튀스와 미츄는 늘 함께였다. 산책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놀이에 지쳐 잠들 때에도.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밤, 미츄는 홀연히 사라진다.
이현아, 『영원한 상실의 장소』

그런데 상실이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상실은 소유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P.20)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처럼 발튀스는 상실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 그의 드로잉에서는 거칠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정교하지만 차갑게 느껴졌다. 그 사이 그 자신도 작화도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이제 걷는 시간보다 차를 타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나의 노견과 산책하면서 공원에서 읽은 책인데 발튀스의 상실을 일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미츄와 함께한 시간보다 미츄를 그리워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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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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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의 이름은 대부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나는 그들의 일부분만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닌 이면을 알게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의 매카시즘으로 인한 예술가들의 상황과 일제 강점기와 독재로 핍박받던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_P.112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항상 그랬다. 수백 년 전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던 과학자는 화형에 처할 뻔했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외친 여성은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며 핍박당했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선 형제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모두 승리했다. 전복적인 사람들이 결국 정복한다. 케이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
존 케이지 작곡가, 1912-1992

_P.121
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바다 건너에 어떤 도시가 있고,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상상했다. 극장에 가기 힘든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보통 사람들은 저녁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도 텔레비전은 괜찮은 친구였다. 텔레비전 안에는 사람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라는 기술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고 믿었다. 〈TV 부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다다익선> 모두 기술에 대한 긍정이 가득한 작품이다.
백남준 미디어 아티스트, 1932-2006

_P.144
전설이 된 재즈 아티스트 대부분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흑인이었던 이유도 컸지만, 마약이 끼친 영향도 무시 할 수 없다. 당시 재즈와 마약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무대 위에서 영혼을 바친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마약과 술의 세계로 망명을 떠났다. 빌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밑바닥과 최상의 삶 모두에서 차별을 겪었다. 10대 때 받았던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언제나 마음속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 이 상처를 마약으로 잊고자 했다. 가수로 벌어들인 돈을 마약 사느라 탕진할 정도였다. 주변엔 나쁜 남자도 많았다. 대부분 빌리의 명성을 이용해 한탕 해먹으려는 건달 같은 남자들이었다. 1950년대 들어 빌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마약에 절어 목소리도 망가졌다. 하지만 그런 채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알궂게도 황폐해진 빌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됐다. ’불우한 삶‘이라는 서사와 함께 빌리는 전설이 됐다.
빌리 홀리데이 가수, 1915-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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