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 방송국 PD의 살아 있는 인문학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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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人文學, humanities)문학, 역사, 철학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문학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인문학적 정보를 얻는 것으로 끝나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더 도전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30년간 방송국 PD 생활을 한 저자는 그간에 경험한 사람과 사건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탐색했습니다.

저자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언급하면서 타인의 불행을 통해 묘한 삶의 위로를 받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도 말합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괴물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을 막아주는 것은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인간이 고통당하는 자극적인 뉴스 장면을 즐기지만,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점점 혐오와 배제가 가득해지는 사회에서 우리가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사회에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1950년의 일본 영화 <라쇼몽>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사악함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이 진실을 가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인간의 이 치명적인 약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신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필요할까요? 각자에게 질문해볼 만합니다.

이 책 마지막은 죽음에 관한 글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저자는 세네카의 글, 김훈의 <칼의 노래>,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를 인용하면서, 타인의 객관적인 죽음이 지금 나의 주관적인 죽음에 진정한 위로와 지혜를 줄 수 있는지 묻습니다. 탄생과 죽음이 교우하는 우리네 인생,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언제나 숙제로 남습니다.

작가는 삶을 변화시키는 독서철학하는 인간이란 글에서 독서나 철학이 지적 허영심을 위한 단순한 장식품이 되지 않고 삶의 곡괭이와 나침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나도 같은 소망을 가지고 인문학책을 깊이 읽고 생각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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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숲에서 - 바이칼에서 찾은 삶의 의미
실뱅 테송 지음, 비르질 뒤뢰이 그림, 박효은 옮김 / BH(balance harmony)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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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젊은 날 깊은 숲속 은둔자로 살아보리라 작정한 실뱅 데송이 바이칼 호수 근처 오두막에서 여섯 달을 지낸 기록을 그래픽 노블로 펴낸 책입니다. 그는 책과 시가와 보드카를 가지고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시베리아 숲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할 일이란 자연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침엽수가 우거진 깊은 숲에는 고독이 있습니다. 작가는 그 고독의 장소가 가진 특유한 힘을 느낍니다. 그는 매일매일 떠오르는 생각을 써 내려갔습니다.

2월 그는 시베리아 숲 오두막에 들어가 한 시간 내내 테이블 위에 비친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리고 햇빛이 스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근사해진다고 느낌을 말합니다. 이 표현이 더 근사하군요! 3월 일기에 쓴 표현도 멋집니다. 공간을 지배하는 인간은 허세를 부릴 뿐이며 자유로운 인간은 시간을 지배한다고 작가는 썼습니다. 숲속 오두막에서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시간은 온순해집니다. 그는 오두막에서 시간과 휴전 협정을 맺고 화해했다고 말합니다. 도시에서 사회적 성공과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들은 언제나 시간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시간의 공격을 받아 쫓기며 살아갈 뿐이죠. 작가는 시베리아 숲 오두막에서 깨닫습니다.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시간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임을!

시베리아 숲과 바이칼 호수에서는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이데올로기는 개들처럼 은둔자의 집 문턱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요. 작가는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묻습니다. 사회적 삶이 부여한 명령에 순응하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현대인의 삶과 숲속의 정령들을 계속 경외하며 숲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삶, 무엇이 더 추구할 가치가 있을까요?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 숲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행복함을 느낍니다. 고요한 그곳에서의 삶이 생기를 가져다줌을 경험합니다. 눈 속에서는 고통스럽지만, 산꼭대기에서는 고통을 잊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따스한 오두막 안에 머물며 창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여섯 달은 그에게 완벽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나는 언제 이런 생활을 체험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훌쩍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걸리는 것이 너무 많네요. 육개월 간 시베리아 숲에서 생활한 실뱅 테송이 한없이 부러우면서도 결단하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함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깊은 숲속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막연한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신 무장부터 해야겠는걸요. 지금부터라도 깊은 사유와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삶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책 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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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음 이후 -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희망,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테렌스 니콜스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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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문제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근본적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오늘날은 왜 몸의 부활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는 것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저자는 몸의 부활과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설득력 있게 주장합니다. 또한 죽음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죽음 이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죽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일입니다.

이 책은 먼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문학을 살펴보고, 기독교 전통 안에서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리고 과학의 도전과 임사체험에 근거한 죽음 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임사체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뇌가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의 정신과 인식이 몸 밖에서 존재할 수 있다면, 영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좀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장 영혼에 대하여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깊게 다룹니다. 죽음 이후 영혼의 생존, 죽음과 부활 사이에 놓인 인격적 정체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전일적 이원론 혹은 창발적 이원론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이 땅에 있는 동안 몸과 영혼은 통합된 일체성을 가지고, 영혼은 몸의 죽음 이후에도 생존하며 부활한 몸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죽음과 부활, 사후 세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도, 죽음은 여전히 재난인 것은 사실입니다. 죽음은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고 감정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무엇보다 죽음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영적 재난입니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님의 사랑이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함을 믿기에 죽음의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선한 죽음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죽는 것”(p. 335)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죽음을 여행길의 한 국면이라고 생각하기에, 준비된 죽음 즉 남겨진 자들과 화해하고,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두려움 없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자가 죽음 시 직면하게 될 심판을 세관 본부(customs station)’,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여권(passport)’으로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개신교 신자로서 나는 성경에 언급이 없는 가톨릭 신학의 연옥설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연옥을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연옥설은 천국의 신비를 인정하고 죽음 이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더 많은 사람이 천국에 이르기를 바라는 소망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 깊이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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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 - 내 인생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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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장석주 하면 대추 한 알이 생각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이 시를 읽고 장석주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엄청난 독서에서 나온 통찰력과 빛나는 문장들에 감탄합니다.

그가 66편의 에세이를 묶어 펴냈습니다.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입니다. 그는 평생 읽고 쓰며 산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책머리를 시작합니다. 그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몰입과 기쁨을 위해 책을 읽었다고 고백합니다. 작가는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감탄하며 즐겼습니다. 그의 이런 고백이 이 에세이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장석주가 좋은 문장들을 접하면서 누렸던 감탄과 환희를 나도 이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 유명한 괴테의 문장,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얘기하지 마라.”를 소개하며 장석주는 절망의 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더는 절망할 여력이 없을 때 죽음을 택하는지도 모르니,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자라는 말이 있듯, 살아남음이 의로움입니다.

강가에서 주워온 돌이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낀다”(p. 217)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에서, 장석주는 슬픔에도 각각의 색깔이 있다고 말하며, 불안에 떨었던 과거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그의 삶과 사유가 녹아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에게 독서는 일탈과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 행복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렇듯 멋진 문장들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추 한 알이 붉게 익기 위해 태풍, 천둥, 벼락이 필요했듯, 그의 찬란한 문장들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에세이집은 이곳저곳 눈길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제격입니다만, 장석주의 글에 매료되어 저녁마다 조금씩 거의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독서의 행복, 무위의 행복을 누린 시간이었습니다. 삶이 불안하고 피곤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과 삶에 대한 초연한 감정이 생길 겁니다. 너무 실용적인 이야기인가요? 그냥 독서의 순간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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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 소설은 한 사람을 알게 하는데 그게 나일 수 있다
이정일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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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경 읽기를 평생의 영적 과업(?)으로 여깁니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은 성경 읽기에 매진하며,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신학과 철학 서적을 탐독합니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허구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소설 읽는 일은 왠지 가벼운 소일거리 독서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죠. 이 책,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은 소설에 대한 이런 편견을 여지없이 쪼개는 도끼입니다. ‘프롤로그의 타이틀부터 눈을 번쩍 뜨게 합니다. ‘사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친구’! 팩트와 실용적 정보만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표류합니다. 이때 소설은 좋은 친구가 되어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독자는 이 좋은 친구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참모습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소설은 나의 진짜 친구라는 작가 이정일의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프롤로그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작가에게 설득되었습니다. ‘미주/참고문헌에서 저자가 언급한 책의 목록을 살펴봅니다. ! 백 권 가까운 책들을 언급했군요. 그중에 내가 읽은 소설을 제법 많이 찾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읽은 소설의 스토리는 얼추 기억이 나지만 감동하거나 도전받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내가 달라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설을 제대로 읽으면, 나와 세상을 알아가는 행복을 경험하고 좋은 문장에 감탄하며 감정의 정화까지 경험합니다. 따라서, 소설을 통해 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인상적인 문구를 소개합니다. “네가 장미를 가꾸는 곳에는 엉겅퀴가 자라 수 없단다(<비밀의 화원>에서). ‘좋은 문장은 작가가 썼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순간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고 작가 이정일은 말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를 즐기고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깊이 즐기고 더 오래 감동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스토리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문장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내면을 변화시켜 나이테 같은 성장의 흔적을 남깁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 문해력이 필수라는 저자의 말, 그리스도인에게도 소설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성경을 소설 읽듯, 소설을 성경 읽듯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재에 가서 내가 소장한 소설들을 찾아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천천히 즐기며 읽어야겠습니다. 분명 소설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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