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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교수와 함께 걷다 : 블라디보스토크 - 러시아 한인이주 150주년 기념
박환 지음 / 아라(도서출판)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러시아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와 그 주변 도시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냥 경치 좋은 곳만 둘러보거나, 쉼을 위해 그곳을 다녀가자는 생각은 아니었다. 러시아 연해주[Примо́рский край]는 한인들이 살았던 곳이기에, 나는 그 장소들을 걸으면서 당시 한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보고 그분들을 마음으로 기리고 싶었다.
1860년대 초 이미 한인들은 연해주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많은 한인들이 일본의 억압을 피해 연해주로 들어왔다. 그 중에는 효과적인 독립 전쟁을 위하여 연해주로 이동한 최재형 선생, 이동휘 선생 등과 같은 독립 운동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한인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이 지속되고 확대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본은 1920년 4월 참변과 같은 학살을 자행하였고, 러시아 당국은 한인들의 자치권 획득을 막고자 1920년대 중반부터 계획한 한인 강제 이주를 1930년대부터 꾸준히 실행하면서 급기야 1937년 9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대규모 강제 이주를 시켰다.
이처럼 연해주는 일본으로부터의 탄압과 러시아로부터의 차별을 겪었던 한인들의 한 서린 장소였다. 나는 그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를 방문하여 한인 사적지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답사 계획을 세우고자 관련 도서를 알아본 결과, 블라디보스토크와 그 주변 도시들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관광 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제목과 같이 ≪박환 교수와 함께 걷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2014년 3월 1일 러시아 한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도서출판 ‘아라’를 통해 간행된 것이다.
저자 박환은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살았던 한인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전문가가 쓴 것으로서 권위 있고 믿을만하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이 책은 반드시 전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은 아니었다. 꼭 전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쉽게 읽을 만하게끔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중고등학생도 소화할 수 있을 내용이었다.
이 책에는 연해주 내 3개 도시 안에 있는 한인 사적지들이 소개되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와, 그 북쪽 도시인 우수리스크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시내 지역․북부 지역․동남부 지역, 그리고 두만강과 인접한 곳에 있는 도시 크라스키노(Краскино)에 있는 한인 사적지들이 그것이다.
최근 나는 이 책을 읽고, 여기에 소개된 한인 사적지를 답사하고자 직접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를 방문하였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휴가를 활용하여 4박 5일간의 제한된 기간 동안 이 책에 서술된 한인 사적지 모두를 답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 주요 장소를 둘러보면서 사적지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살았던 한인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기리어 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처음 한인들이 이주하였던 해양공원, 디나모(Динамо) 경기장(Адмирала Фокина Улица 1) 입구 맞은편의 자매결연공원(Семёновская Улица 1-3) 모퉁이에 있는 <연해주 한인이주 150주년 기념비>, 한인들을 핍박한 바 있는 연해주 총독의 옛 관저(Светланская Улица 52), 1917년 4월 이동휘 선생 등이 기독교 전도회를 구실로 조직적 운동을 하였던 푸쉬킨 극장(Пушкинская Улица 27),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 문학비(Аксаковская Улица 12А 건물 후원), 1937년 한인들을 강제 이주하기 위해 집합시켰던 혁명광장, 신한촌 입구(Комсомольская Улица 13), 서울거리 2A 가옥(Сеульская Улица 2А), 한민학교 터(Амурская Улица 7),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ХабаровскаяУлица 26б),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등을 갔다.
우수리스크에서는 라즈돌나야(Раздольная) 강변에 있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 최재형 선생 최후 거주지(Володарского 38), 1918년 6월 13일~23일 전로한족 중앙총회 결성 장소(Горького Улица 20), 1920년 4월 참변 추모비(Комарова Улица 1), 고려인 문화센터(Амурская Улица 63A), 우수리스크 기차역 등을 방문했다.
이 책은 연해주에서 거주하였던 한인들의 삶을, 그리고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추적할 수 있는 좋은 도서이다. 다만 한인 사적지의 정확한 주소와 지도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명확히 표기되지 않아서 이 책을 단서로 한인 유적지를 찾아 가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이를 위해 미국의 Google 지도 서비스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연해주를 답사하면서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서술하고자 한다. 서울거리 2A 가옥을 찾느라 헤매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등 매우 번거로웠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비포장도로에 주변은 창고들이 줄지어 있어서 마치 빈민가를 연상시켰다. 포석 조명희 문학비가 있는 곳에는 주변이 철창으로 둘러 닫혀있어 근접할 수 없었다. 신한촌 입구와 한민학교 터 등에는 이를 알려주는 어떤 표식이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에서 홀로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을 지키는 리웨체슬라브 선생은 고려인으로서 2007년 7월 1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는데, 지금은 중풍을 앓아 오른손과 다리를 거의 쓸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위와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한인 사적지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관심은 적어 보였다. 만일 러시아 소재 우리나라 유적지 보호를 위한 러시아 당국의 관심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정부가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할 텐데, 우리나라 정부 차원의 대책과 지원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관심 속에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2017년 4월 14일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연해주 개황 및 블라디보스톡 약황>을 살펴보면, 2017년을 기준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고려인의 수는 블라디보스토크 인구 192만 3,100명의 0.96%를 차지하는 약 1만 8,000명으로 집계된다. 최소한 그곳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나라 정부가 러시아 당국과 적극적으로 교섭하여 한인 사적지를 보존․보수하고, 누구나 그 유적지에 찾아갈 수 있도록 표식을 세우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2018.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