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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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이 저승이다.

죽음은 그렇게 가까이 있다.

순서없이 예고없이 불쑥 나타나기도 하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어릴 적 꽃상여를 보고 놀라 집으로 뛰어 오다 넘어져 턱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일까. 죽음은 나에게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두려움은 내 인생에서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고 해결하고 해치우고 싶은 숙제다.

그간의 내 노력은

영화 “축제”를 보았던 것.

엄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

장례식장에 가서 위로를 할 줄 알게 된 것.

부단히 노력해도 죽음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만화 책, “기분이 없는 기분”을 읽었다.

아버지의 고독사를 실제로 경험한 작가가 우울증을 겪으며 그리고 쓴 만화이다.                                                  

피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연을 끊은 아버지가 책상 앞에 앉아 죽은 지 오래되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후의 이야기니까.

나는 이 주인공이 겪었을 우울과 기분 없는 기분보다 사람이 실제 죽음에서 보이는 모습과 뒷처리에 더 관심이 갔다. 그래야 인간의 죽음을 더 실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이번에 읽은 책이 바로 김완의 “#죽은 자의 집청소”이다.

유시민이 두 번은 읽지 말라고 한 말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죽음 뒤의 실체를 너무 구체적으로 보여 주니까.

방진 마스크가 아닌 방독 마스크를 쓰고 범죄현장이나 고독사, 자살 현장을 누비며 무심해지려고 애쓴 것이 담담하게 표현되어 작가의 마음이 더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상 깊은 장면이 많다.

착화탄에 불을 붙인 후 부탄가스의 뚜껑까지 분리수거한 후 죽은 사람 이야기.

죽음 뒤의 모습도 죽기 전의 모습과 닮았다.

한때는 애정이 넘쳤던 부부가 함께 죽은 침대 맡에 숨겨졌던 두 자루의 칼 이야기.

결혼 사진에 썼다 지운 “개새끼”라는 말에 담긴 사랑의 모습.

자살한 집 대문에 대부분 붙어 있던 체납요금 포스트잇 이야기.

작가는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우울하고 비참하고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작가의 “언제나 고통이란 더 극심한 고통에 순위를 내주곤 잠잠해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처럼 고통은 다른 고통으로 색이 바랠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도 한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누구든,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난치병 앓는 외로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면 좋겠다. 햇빛이 닿으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그 만남의 자리는 눈부시도록 환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귀신도, 흉가도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못하리라 "

나는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조금이나마 익숙해질 수 있었다.

작가가 현장을 청소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냄새를 떠올렸고 함께 청소 후의 쾌감도 느꼈다.

죽음은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독사나 자살, 범죄현장에 공통적으로 스며있었던 "가난"도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참말이다.

어쩌면 대문 안에도 저승은 숨쉬고 있을 것이다.

아직 작가처럼 죽음의 스위치를 "ON"으로 켜 놓지는 못했지만 한 발짝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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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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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들 - 세계현대작가선 11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문학세계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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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갈 기회가 적어졌고 내가 고르는 책에 대해 신뢰감도 생기지 않았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이곳 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재밌게 읽었다던 책들을 섭렵하는 것이 내 도서 선택 방법이 되었죠.

어느 것이 좋은 도서 선택 방법일지 모르나 큰 낭패감을 본 적 없고, 매우 유익했으니 당분간 내 도서 선택 방법은 현상유지를 할 셈입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참 많은 책을 접했습니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말이죠.^^ 벽지에서 자란 나는 여름엔 물속에서 살았고, 겨울엔 얼음판에서 미끄럼질이나 하며 살았으니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죠. 접해본 책이라곤 고작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단 한 권 정도였나? 아, 집에서 뒹굴던 나달나달했던 식물도감은 참 많이도 봤습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인지, 그 이듬해 봄인지..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제르뜨류는 거기 나오는 눈먼 소녀의 이름입니다. 나는 단박에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내 친구이자, 분신이자.. 뭐 그랬습니다.

얼마 전 엔씽크님이 감명깊게 읽었다던 주제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을 읽었습니다. 포루투칼 출신의 노벨문학상수상자라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죠 뭐, 알았던들 그 사람 책을 선택하는데도 별 보탬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쥬제’입니다. 일단 색다른 이름이 맘에 들었죠. 그리고 쥬제씨의 외로운 인생과 그의 집착과 색다른 상상력이 제르뜨류에게 반했던 그 시절처럼 또 쥬제씨가 좋아졌습니다.

심리묘사가 리얼해서 무척 재밌는데... 이런 쥬제씨를 보면서 눈물이 찔끔 찔끔 나기도 했습니다. 근데 그게 마냥 재밌어서 그랬는지, 아님 슬퍼서 그랬는지 잘 분간이 안 갑니다..

이제는 쥬제씨에게 내 비밀 얘길 털어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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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5-11-27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살까말까 상당히고민하고 있었는데 님 글 읽으니 사야 되겠네요;;
눈먼 자들의도시 참 명작이죠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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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들의 시나, 소설만 보다가는 그에 대한 괜한 오해와 괜한 과대평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들이 쓴 수필을 접하게 되면 너무도 진솔해서 오해를 접게 되고, 과대평가도 평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권정생도 그런 연장선에서 내게 큰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권정생이란 사람을 그저 동화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이렇게 가까이 생활하는 모습을 엿보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는 얘기이다.

내가 처음 놀란 것은 권정생이 미혼이며 교회당 문간방에서 외롭게 사는(외롭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을 수 있겠다. 그는 쥐랑도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니깐) 할아버지란 점이었다. 내 마음대로 그저 추측하길 권정생은 마음씨 곱고 수수한 부인과 함께 소박하게 알콩달콩 사는 분일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장황하게 써 놓진 않았지만 글 속에 담긴 일부분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감히 짐작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해 악의 없이 질타하는 모습이 범인의 모습을 넘어선 듯 훌륭했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나 자신을 얼마나 많이 돌아봤는지 모른다.

문체가 유려한 것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을 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의 어눌한 문장이 더욱 가깝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편안과 안녕은 무덤에서나 생각하라지. 나를 둔감하게 하는 그것들에 집착했던 나를 더욱 많이 비판하고 질타했던 시간이었다.

수필이란 건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어서 즐거움이 느껴지는 문학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기만 했던 나는 몸소 그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는 값진 계기가 되었다.

또한 실천 의지에 불을 당겨준 점에서도 값진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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