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 83호

“백은선의 시집을 해로운 시집 취급하라”
시인 김승일은 백은선의 다섯 번째 시집에 발문을 쓰며 '이 시집 『비신비』를 노래하라. 고통받으라, 전부 읽었다고 속단하지 말라, 죽고 싶다는 백은선의 말에 속지 말라, 목격자가 되지 말라, 해로워져라, 숨지 마라'라고 당부했습니다. <가능세계>부터 이어져온 백은선의 연작 시집의 세계에도 시간이 흐릅니다. 소녀 경연 대회를 하던 화자는 이제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물었어 엄마 데스노트를 갖게 되면 누구 이름을 쓸 거야?'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는 엄마고, 자기 이름을 적고 싶어합니다.
한여름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로 출간된 <뾰>와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겨울 출간된 하늘색 시집 <비신비>에 열매가 부푸는 듯한 여름 표지의 '뾰'의 8월의 날들(여름, 열매가 부풀어오르는 간지러움과 아픔을 생각하며 그 감격 속에서. <뾰>중 )에서 굴려보던 시작노트의 문장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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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승일은 백은선의 다섯 번째 시집에 발문을 쓰며 '이 시집 『비신비』를 노래하라. 고통받으라, 전부 읽었다고 속단하지 말라, 죽고 싶다는 백은선의 말에 속지 말라, 목격자가 되지 말라, 해로워져라, 숨지 마라'라고 당부했습니다. <가능세계>부터 이어져온 백은선의 연작 시집의 세계에도 시간이 흐릅니다. 소녀 경연 대회를 하던 화자는 이제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물었어 엄마 데스노트를 갖게 되면 누구 이름을 쓸 거야?'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는 엄마고, 자기 이름을 적고 싶어합니다.
한여름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로 출간된 <뾰>와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겨울 출간된 하늘색 시집 <비신비>에 열매가 부푸는 듯한 여름 표지의 '뾰'의 8월의 날들(여름, 열매가 부풀어오르는 간지러움과 아픔을 생각하며 그 감격 속에서. <뾰>중 )에서 굴려보던 시작노트의 문장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해 반가웠습니다.
이제 내 목표는 위대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어쨌든 끝까지 죽을 때까지 시를 쓰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순간순간 작게 빛나는 순간들, 사금 같은 조각들을 만나며 살고 싶다. (<뾰>116쪽)고 시인은 시 바깥에서 적었습니다. 시 안에서 이 작게 빛나는 순간들이 잘게잘게 부서집니다. '이토록 가벼운 것은 처음이라고 / 눈 속에 누우며 / 나 처음이야 너는 다시 말하고' (176쪽) '눈 속에 묻힌 책을 찾아 나섰다.' (211쪽) '눈은 그치지 않았다'(247쪽) 같은 한기가 서린 이미지들이 반가웠습니다. 첫눈을 기다리며 읽기 좋은 시집을 권해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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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쪽 : 계속 들여다보면 열리는 세계가 있다 수백 번 되풀이해 읽어야만 열리는 구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매력적인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읽지 않고도 내용을 어느 정도 창작해 말할 수 있는 깔깔도서인데요,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로 2025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신해욱이 소설로 픽션, 가짜에 관한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영화의, 세상에 없는 장면들에 관한 '미개봉박두' 단편소설 다섯 편을 모았습니다.
세 친구와 함께 떠난 통영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하하하하하>, 1930년대 경성, 두 여학생이 영등포역 철로에 뛰어들고 100여년이 지나 그들이 다니던 여고에 임시교사와 전학생이 등장한 <여고괴담7: 도돌이표> 같은 제목만 봐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AI가 혼란한 가짜 이야기를 마구 창조해내는 시대와 함께 건네보는 보르헤스적인 농담이 있으려나 영화관에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교양 분야의 양서를 꾸준히 출간하며 입지를 다져온 교유서가에서 ‘시집 시리즈’를 론칭했습니다. 기존 출판 영역을 확장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와 감각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시(詩)의 세계로 내딛은 첫발입니다. ‘신선한 감각으로 일상에 시를! 교유서가, 시에 새로움을 더하고 색을 입히다’라는 카피로 야심차게 시작하였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신진 시인 소후에의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소후에 시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시인이 언어의 숲속에서 벼려낸 마흔다섯 편의 시를 ‘문’을 중심으로 네 개의 부로 엮은 시집입니다. ‘문 NO.365’에서 ‘문 NO.∞’로 이어지는 이 시집의 여정은 일상과 내면의 경계를 드나드는 시적 실험이자 끝나지 않은 탐문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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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분야의 양서를 꾸준히 출간하며 입지를 다져온 교유서가에서 ‘시집 시리즈’를 론칭했습니다. 기존 출판 영역을 확장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와 감각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시(詩)의 세계로 내딛은 첫발입니다. ‘신선한 감각으로 일상에 시를! 교유서가, 시에 새로움을 더하고 색을 입히다’라는 카피로 야심차게 시작하였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신진 시인 소후에의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소후에 시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시인이 언어의 숲속에서 벼려낸 마흔다섯 편의 시를 ‘문’을 중심으로 네 개의 부로 엮은 시집입니다. ‘문 NO.365’에서 ‘문 NO.∞’로 이어지는 이 시집의 여정은 일상과 내면의 경계를 드나드는 시적 실험이자 끝나지 않은 탐문의 기록입니다.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닫힌 세계 안에서도 무언가 자라나는 풍경을 그립니다. 웃자라는 감정, 웃자라는 언어, 웃자라는 상처들이 시의 행간에서 끊임없이 들썩이는데요. 그것은 ‘우주’라는 거대한 은유와 닮아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으나,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하고 순환합니다. 시인은 “죽어가는 나무들 사이로 내달리는 너”를 바라보며,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푸른 사과처럼 무사한’ 세계의 또 다른 형태임을 믿는 듯합니다.
“방은 하나의 밤입니까?”라는 물음은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묻는 동시에 시의 존재 이유를 되묻습니다. 그 물음 앞에서 시인은 서성지만, 그 서성임은 멈춤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보단 다음 문장을 향한 준비에 가깝지요.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자신이 들어온다」)는 고백은 곧 시인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계에 건네는 다짐처럼 읽힙니다.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에서 시인은 완벽한 이해나 도달 대신, 끝없이 쓰고 부딪히며 ‘닫힌 문’에 귀를 대어 듣습니다. 그래서 소후에의 시는 불안정하면서도 단단합니다. 푸른 사과처럼 단단하고, 무사한 세계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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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출간한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으로 독자의 지지를 얻은 유선혜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2025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출간하는 신작입니다. 먼저 읽은 배우 심은경이 '나는 이 시집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고 말을 더했습니다.
'모텔 연작'을 실은 2부가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인간보다 나방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는 나는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겉도는 물음들'이라는 에세이가 함께 수록되어 나방들의 세계의 문을 살짝 열어 보여줍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활자들의 나라’로 미끄러져 들어간 도서관의 소녀는 '내가 속한 세계는... 고차원적이고 은밀하고 우아한 활자들의 나라야.'라고 되뇌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킵니다. 첫 시집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모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