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
어느 날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웃거나 집중하거나 음식을 씹는 그 얼굴에서 자신들이 사랑했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본다.
그 안에 전부 있다. 이 몇 사람에게로 응축된 인류는 더는 종잡을 수 없이 이질적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종(種)이 아니다.
가깝고 붙잡을 수 있는 존재다.
p.46
오늘 네 번째 궤도를 돌며 맞이한 새 아침, 사하라 사막의 흙먼지가 수백 마일 띠를 이뤄 바다로 쓸려 간다. 뿌옇게 담녹색으로 반짝이는 바다, 뿌연 주황빛 땅. 빛이 울리는 이곳은 아프리카다. 우주선 안에 있어도 빛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란카나리아섬에 방사형으로 퍼져 있는 가파른 협곡은 성급히 지은 모래성처럼 섬을 쌓아 올리고, 아틀라스산맥이 사막의 끝을 고하면 스페인 남부 해안으로 꼬리를 톡 내민 상어 모양 구름이 나타난다. 지느러미 끝은 알프스산맥 남쪽을 쿡 찌르고, 주둥이는 당장이라도 지중해로 뛰어들 것 같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는 산으로 뒤덮인 부드러운 벨벳이다.
p.53
우리는 어린 시절 특별하게 키워져 더없이 평범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고 순진한 마음에 벌컥 기뻐한다. 특별하지 않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테니까. 우리 세상과 같은 태양계가 아주 많이 존재하고 아주 많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면 적어도 한 곳에는 틀림없이 생명체가 살 것이다. 함께라는 느낌이 하찮은 우리 존재를 위로한다
p.101
이 태풍은 90분 전보다 더 커지고 대담해져 육지에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그것은 분노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면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반항이고 힘과 활기에 더 가깝다. 하카 춤을 추는 마오리 전사처럼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민 표정.
p.132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성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숲, 극지방, 저수지, 빙하, 강, 바다, 산,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