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바흐 : 천상의 음악> 속에서
26p
바흐의 칸타타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다면적인 인간 존재의 모습이 음악 안에 얽혀 작품의 형식적인 껍데기 뒤에 자리하고 있다. 바흐 자신의 연주 흔적이 그 안에 엮여 있는데, 이 흔적들은 자연의 순환과 변화하는 계절에 순응하고, 날것 그대로의 물질적인 삶에 민감하지만 더 훌륭한 내세를 고대하며 들떠 있는 누군가의 음색이기도 하다.
30p
바흐의 작품들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칸타타, 모테트, 수난곡, 미사곡 안에서 음악이 가사 및 텍스트와 연관되면서 특별한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그 가사와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로 엮였는지, 나는 실제 연주를 통해 이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지휘자이자, 평생 바흐를 연구해온 학자의 입장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얻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와 기쁨을 전달하고 싶다.
32p
연주가 끝나고 음악이 그것이 시작된 침묵 속으로 도로 녹아들어가는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험의 충격 속에 여전히 머문다. 처음에 이 음악을 작곡한 남자에게 거울을 비추는 것 같은 느낌 또한 강하다. 청중과 자신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싶어 했던 열정, 그리고 무한한 창의력과 지성, 재치, 인간성을 작곡 과정에 쏟아 넣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을 생생하게 반영한 바로 그 남자 말이다.
760p
그 어느 것도 바흐 음악이 지닌 압도적인 변용의 힘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음악에 담긴 생각과 감정을 다른 경우보다 훨씬 솔직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다면, 이 음악은 커다란 위안을 안겨준다. 마치 위대한 작가처럼 우리에게 언어를 해석해주고, 인생 그 자체의 의미를 포착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대체 무엇인지 바흐가 이해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본질적 가치가 있다.
875p
가장 난해한 바흐 작품에 도전하면서 적절한 기교가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는 순간, 성악 및 기악이 최상의 조건에 이른 순간,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음색이 서로 어울리며, 모두가 서로의 역할을 상호 이해하고 있는 순간에 비로소 진짜 해석은 시작될 수 있다.
888p
폐기된 표현 패턴을 새롭게 만들어진 유기체에 대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새로운 삶의 형식은 늘 고유의 형태를 취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인식하거나 ‘읽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