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 : 97호

이 책이 지금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서소문고가도로 철거를 시작하기 전 다리 밑엔 나이 든 노숙인들이 있었습니다. 해체되기 시작하는 다리를 보면서 여기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출퇴근길에 10년씩 뵌 분은 낯이 익기도 한데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그 분을 뵈면 무사하시구나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천명관의 <아코디언>은 서울의 거리를 주제로 한 하드보일드한 소설입니다. 1950년대의 서울. 전쟁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의 옷을 벗겨입고 추위를 피하던 아이들은 앵벌이 아이들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양 목사'의 지시를 받으며 구걸하고 또 빼앗깁니다. 서울의 염천교며 해방촌 판자촌을 배경으로 다리를 잃거나 눈을 잃거나 팔을 잃은 아이들이 어떻게해서든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과정이 <고래>의 독자라면 예상할 수 있는 그 속도로, 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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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고가도로 철거를 시작하기 전 다리 밑엔 나이 든 노숙인들이 있었습니다. 해체되기 시작하는 다리를 보면서 여기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출퇴근길에 10년씩 뵌 분은 낯이 익기도 한데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그 분을 뵈면 무사하시구나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천명관의 <아코디언>은 서울의 거리를 주제로 한 하드보일드한 소설입니다. 1950년대의 서울. 전쟁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의 옷을 벗겨입고 추위를 피하던 아이들은 앵벌이 아이들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양 목사'의 지시를 받으며 구걸하고 또 빼앗깁니다. 서울의 염천교며 해방촌 판자촌을 배경으로 다리를 잃거나 눈을 잃거나 팔을 잃은 아이들이 어떻게해서든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과정이 <고래>의 독자라면 예상할 수 있는 그 속도로, 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고통과 한 축을 이루는 것은 거리의 악사인 소년 앵벌이 '동이'가 낡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목격했던 소년은 한번 목격한 아름다움의 세계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애처롭고 영리한 아이들이 벌이는 분투를 목격하고 나면 2026년의 서울 변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베사메무쵸를 들으며 오가는 길의 사람들이 달리 보이는 이 소설을 만나보시길 바라겠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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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쪽 : 칼이 겨누고 있는 상대는 나무나 풀이 아니었다. 개나 돼지도 아니었다. 비록 죽음의 문턱에 서 있지만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동이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고 칼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마침내 잭나이프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다른 사랑> 표지 뒷면의 '어쩌면 여름 냄새가 대체로 그런 건지도 몰랐다'('정선', 91쪽) 문장이 시선을 붙듭니다. 최은미 작가의 소설 속 여름은 바캉스의 이미지보다 '무른 과일 냄새 같은' 여름의 형식으로 묘사되는 듯합니다. 작가께서는 여름을 좋아하시는지, 이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
네, 여름을 좋아합니다. 사실 각각의 이유로 네 계절을 다 좋아하는데요, 소설을 쓸 때 배경으로 자주 불러오게 되는 계절은 겨울과 여름이에요. 특히 여름은 감각이 외부로 열리면서 냄새나 소리에 더 장악되는 계절인 것 같아요. 저는 여름이 오는 걸 과일 가판대에서 나는 냄새로 제일 먼저 실감하는데요, 자두랑 복숭아가 막 진열됐을 때 나는 향을 맡으면 달콤하고 설레면서도 슬픈 조바심이 나요. 금세 물크러지고 망가질 것들이 지천이어서 애틋함도 충동성도 높아지는 계절, 그래서 이야기가 많아지는 계절, 제게는 여름이 그런 계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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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다른 사랑> 표지 뒷면의 '어쩌면 여름 냄새가 대체로 그런 건지도 몰랐다'('정선', 91쪽) 문장이 시선을 붙듭니다. 최은미 작가의 소설 속 여름은 바캉스의 이미지보다 '무른 과일 냄새 같은' 여름의 형식으로 묘사되는 듯합니다. 작가께서는 여름을 좋아하시는지, 이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
네, 여름을 좋아합니다. 사실 각각의 이유로 네 계절을 다 좋아하는데요, 소설을 쓸 때 배경으로 자주 불러오게 되는 계절은 겨울과 여름이에요. 특히 여름은 감각이 외부로 열리면서 냄새나 소리에 더 장악되는 계절인 것 같아요. 저는 여름이 오는 걸 과일 가판대에서 나는 냄새로 제일 먼저 실감하는데요, 자두랑 복숭아가 막 진열됐을 때 나는 향을 맡으면 달콤하고 설레면서도 슬픈 조바심이 나요. 금세 물크러지고 망가질 것들이 지천이어서 애틋함도 충동성도 높아지는 계절, 그래서 이야기가 많아지는 계절, 제게는 여름이 그런 계절인 것 같습니다.
Q :
2025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김춘영>을 최윤 소설가가 '소설가 최은미의 의미 있는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라고 평했습니다. '정선'의 여름과 다른 계절을 그리는 눈 내리는 화운령은 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한데요. ‘지방-공간 3부작’으로 묶인 초반 세 소설을 작업할 때 이 공간의 어떤 면을 그리고 싶었는지, 소설의 배경이 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
어떤 장소들은 그곳에서 소설이 시작되거나 진행된다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서사적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장소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인물이 움직이고, 장소의 특성 자체가 곧 소설의 플롯이 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김춘영>의 폐광촌 골짜기, <무장하는 날>의 접경도시 같은 장소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장소 자체가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정선>을 포함해 이 세 단편들을 쓰면서는 현재의 풍경이나 지면 아래에 여러 겹의 시간과 기억이 중첩돼 있다는 걸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장소에 쌓인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그 기억들이 현재의 삶과 어떻게 만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Q :
최은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의 발 밑에 무엇이 묻혀있을지 의심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며 각자의 기억과 진실을 발굴하게 될 탐험가, 독자에게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
땅을 팠을 때 무언가가 나온다는 건 즐거운 일일까요, 무서운 일일까요.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정말 고고학적 행위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땅을 팠을 때 우리 눈앞에 드러나는 건 토기 한 편, 기와 한 조각처럼 파편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계속 추적하고 상상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을 읽으며 발에 걸린 작은 조각 하나를 집어들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함께 상상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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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2025년 수학능력시험에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이 출제되었다는 기사와 이 시의 도입부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의 '킥킥'에 관한 수험생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역시 21세기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게 교과서 시는 김소월, 윤동주라는 느낌이 있었기에 허수경 시인이 입시의 시에 진입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했습니다.
더는 세상에 없는 시인의 마지막 42편이 유고시집으로 독자를 만납니다. 시인은 타계 전 오래 투병을 했는데요, 살아서도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자리를 발굴해온 고고학자인 시인은 언젠가 가게 될 먼 집의 이미지를 미리 그리고 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고아인 시인들을 사랑한다. 모어로 아무도 밟지 않은 영토에서 비틀거리는 시인들을 존경한다.' 라는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며, 허수경의 시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애틋한 시집입니다.

페이지터너가 돌아온다
여름은 소설 읽기 딱 좋은 계절이라고 (물론 소설로 밥벌이를 해온 저는 봄에도 감성이 소설 읽기 딱 좋은 계절이라고, 가을 겨울에도 집에서 콕 소설 읽기 딱 좋은 계절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생각합니다. 여름 소설 시장에선 특히 시원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페이지터너' 작가들의 작품이 큰 사랑을 받곤 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스토리력이 강한 두 작가가 신작을 선보여 함께 보여드립니다.
<표류 소년>은 <뿌리 깊은 나무> 이정명의 신작입니다. 아무에게도 엄마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채 한 달 남짓한 시간 그 곁을 지킨 열네 살 소년을 둘러싼 가족, 입시 스릴러 소설입니다. <서울의 선인>은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의 신작 장편소설입니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연상케하는 제목인데요. 북한산 아래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김재근의 앞에 '성스러운 가브리엘', '성갑'이 등장해 자신이 천사이며 타락한 도시 서울을 벌하러 왔다는 얘기를 합니다. 과연 재근은 서울에서 의인을 찾아 도시를 구할 수 있을까요? 흥미진진한 상상력이 끝을 향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