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지음 / 다산북스
“따스한 문장만으로는 차가운 세계와 싸울 수 없다.”
소설가 강화길 추천
시작부터 눈부셨던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이 마지막 작품집에 주목해야 한다. 키건이 이토록 다양한 주제, 다채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였던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했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대서양을 건너 미시시피의 트럭 휴게소, 늪지대 뉴얼리언스를 배경으로 하는 『남극』 속 이야기를 누비다 보면 26년간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작품집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클레어 키건을 읽었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 『남극』 속 대부분의 이야기는 키건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혹독한 서리, 삶은 햄, 그리고 토요일 밤 술집에서 왈츠를 추는 풍경이 보이는 소외된 지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대륙을 막론하는 이야기 속 여성들에게는 불행이 찾아온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임신을 하거나 미쳐버리고, 기이한 사고로 죽거나, 음식을 얻기 위해 우체부와 잠자리를 같이해야 한다. 여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의 힘을 모르는 남자들의 품에서 춤추며 타버릴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게 얼어붙고 무감각한 채로 남을 것인가.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비교할 때 저자가 이 책에 담지 않는 것은 ‘따스함’이다. 맡겨진 소녀를 맡은 친척 부부, 석탄 상인 빌 펄롱과 달리, 『남극』 속의 인물들은 구원받지 못했고, 특히 여자들은 가차 없이 내몰린다. 그럴 만도 하다. 그곳은 차가운 세계니까. 50대 중반이 되어 비로소 사랑까지 품게 된 키건은 20대 젊은 시절 분노에 사로잡혀 이 글을 썼다.
이 책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 마틴 힐리 상, 프랜시스 맥마너스 상, 윌리엄 트레버 상 등 무려 4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아일랜드 문학계에서 사건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