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은 내 평생의 항상성이었다.” 간절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 요구하는 유일한 대가이므로 2년 전 치명적인 사고 이후 무대를 떠난 세계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레오노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옛사랑 같은 이 도시는 자꾸만 그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엄격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던 엄마, 엄마가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홀연히 떠난 아버지, 자신을 몰락으로 이끈 두 남자가 그의 눈앞에 유령처럼 되살아나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 경쟁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드미트리는 이제 감독이 되어 나탈리아에게 무대 복귀를 제안한다. 한때 당대 가장 유명한 무용수였으나 지금은 통증을 잊기 위해 약과 술에 의지하는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면 선뜻 응할 수 없다. 자신을 망가뜨릴 뻔한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떠날 것인가. 나탈리아는 자신의 최고 전성기와 가장 어두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을 다시 마주할 것인지, 더는 상처받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일생에 마지막일지 모를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