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2일 :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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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방학 숙제로 한달 일기를 하루에 몰아 쓰던 꼬마 시절 이후 저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시옷이라는 이름으로 일기쓰기 교실에 등록하게 된,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나'도 어느 순간 일기에서 멀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남편과 별거하며 딸과도 멀어지게 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일기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시옷'은 한 글방의 일기쓰기교실을 발견합니다. 일기를 쓰기 위해 구태여 배우는 사람들의 나른한 분위기에 젖어들며 시옷은 무너진 자리의 외면하던 기억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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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요. 자신과의 거리가 0일 때 우리는 그것을 문제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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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이소 평론가의 해설 첫 문장부터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신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각자가 살던 집이 떠오르는 소설이라 김혜진 작가의 기억 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A : 집이 외면과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외면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내면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느냐에 따라 집의 공기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당시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거쳐온 집들이 저에게 준 기쁘고 환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느껴집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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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지난 11월 18일 부산에서 첫눈이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산자락을 끼고 좁고 가파르게 난 도로는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아 눈이 조금만 쌓여도 통행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 드물고 귀하다는 부산의 눈을 생각하면 김금희의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이 떠오릅니다.

피디인 지민은 음식 사진으로 가게를 맞히는 '맛집 알파고'의 진실을 취재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맛집 알파고'이자 전 남자친구의 현우를 취재하는 동안 하필 날은 크리스마스, 장소는 눈이 오는 부산이라 이 희박한 행운이 지민의 마음을 뭉근하게 녹입니다.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회색 바다가 보이는 영도의 카페에서 뱅쇼를 마시며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며 올해의 남은 날을 꼽아봅니다.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김금희 작가의 말을 덧붙여 봅니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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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래빗홀

화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화성침공〉의 대두 외계인이나 〈마션〉에서 감자 먹는 맷 데이먼일까요? 화성으로 건너가는 인원을 선발하는 스페이스 X 프로젝트에 지원한 사람이 이미 무척 많다고들 하죠. 지구를 떠나 붉은 사막과 푸른 노을이 있는 드넓은 평원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당신의 새로운 집을 상상해보실 수도 있나요?

“‘배명훈 SF’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정소연 소설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SF평론가 심완선), SF 소설가 배명훈이 국내 최초로 화성 이주를 주제로 삼아 연작소설집 『화성과 나』를 선보입니다.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소설로 언제나 실패 없는 독서 경험을 선물해온 작가 ‘배명훈’의 신작이지만, 이번 소설집은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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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의 일일

박태원의 글에 연재 당시 붙었던 이상의 삽화가 함께 실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출간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은 어찌나 현대적인지 꼭 2020년대의 우리의 삶 같습니다.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같이 느꼈다. (57쪽)

이상과 구보를 추리소설의 문법으로 해석한 <경성 탐정 이상>도 구보 씨의 이야기에 함께 놓아봅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가 시가 오가는 거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추리소설의 문법을 문학사의 인물에게 입힌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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