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회는 '테너의 오페라'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테너는 소프라노의 상대역이요, 남자 주인공이기는 해도 성급한 판단으로 서두르는 바람에 비극을 초래하는 미성숙한 인격체로 그려지곤 한다. 베르디도 그런 오페라를 섭렵한 후에 <가면무도회>를 작곡했는데,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는 부하의 아내 아멜리아를 사랑하는 격정에 사로잡히지만 이윽고 그 열정을 힘겹게 통제하려는 성숙한 주인공의 모습을 변화한다. 이전 오페라의 테너들과 달리 어른스런 남자로 진화하는 진정한 전환점이 된 오페라인 것이다. 실력과 표현력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정통파 테너로 인정받는 아르헨티나의 마르셀로 알바레즈가 리카르도 역으로 나섰다. 벨칸토로 다져진 미성과 대형가수의 파워를 겸비한 알바레즈의 솜씨는 파바로티와 도밍고 등 전설적 선배에 견줄 만하다. 아멜리아 역의 비올레타 우르마나는 메조소프라노로 출발한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과 진솔한 연기로 베르디 중기작의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테아트로 레알 마드리드의 2008년 9월 실황이며 동 극장을 이끄는 거장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가 지휘한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이자 극장연출가이자 대본작가이기도 한 마리오 마르토네는 극의 어두운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보충자료
○ 베르디 오페라는 몇 개의 기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초기는 벨칸토 오페라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서 출세작 <나부코>를 위시하여 <에르나니>, <맥베스>등이 유명하다. 벨칸토의 영향이 남아있지만 한층 원숙한 필치로 다듬어진 이행기에는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같은 가장 인기 높은 오페라들이 속한다. 중기는 벨칸토를 넘어 베르디 고유의 특징이 꽃피우는 시기로서 <가면무도회>, <운명의 힘>, <돈 카를로>등이 차지하고 있다. 이때부터 테너의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서 원숙한 인격체로 진화하는 것인데 <가면무도회>야말로 그 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후기는 마지막 세 작품인 <아이다>, <오텔로>, <팔스타프>가 차지하고 있다.
○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 오페라 계에서 현재 가장 인기 높은 테너는 롤란도 비야손, 후앙 디에고 플로레즈 같은 아직 30대의 젊은 스타들이다. 그러나 오페라 전문가들은 마르셀로 알바레즈(1962~)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도니체티와 벨리니로 출발하여 지금은 베르디와 푸치니, 프랑스 오페라까지 망라하는 폭넓은 레퍼토리의 소유자이자 발성법이나 성량, 표현력에 이르기까지 쓰리 테너를 잇는 대형 가수의 면모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공부했으나 가업을 잇기 위해 한동안 노래를 떠나 있다가 뒤늦게 공부를 재개했고, 유럽으로 건너와 단시간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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